Thursday, November 20, 2008

순전한 기독교 - C.S. 루이스

Mere Christianity - C. S. Lewis

이 책은 지은이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BBC방송을 통해 평신도 및 무신론자들을 위해 강의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그 후 저자는 기독교인이 당면한 문제, 기독교인으로서의 행위, 인격을 초월한 존재 등 세 권의 책을 한 권으로 펴냈습니다. 이 책은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의 가치관,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의 행위, 인간의 사념을 초월한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이 책을 통하여 지은이는 기독교나 가톨릭, 혹은 성공회 등 일정 교파의 소속이 되기를 바라지 않고 그야 말로 "순수하게 예수 믿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힙니다.

다음의 YouTube를 보시면 이 책을 쓰게된 배경과 입장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YouTube 사이트에 가시면 책 전체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C.S. 루이스는 1898년 북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자서전 아닌 (유일한) 자서전 Surprised by Joy: The Shape of My Early Life (1955)을 보면, 1895년 생인 형 Warren Hamilton Lewis와 친구처럼 행복한 시간을 많이 보낸 듯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별로 없지만 아버지가 책읽기를 좋아해서 온 집안에 돌아다니는 책을 닥치는대로 읽으며 아주 어린나이에 그만의 "상상의 세계'에서 놀았다고 합니다. 1908년 어머니가 병사하고, 그 후 아버지에 의해 보딩스쿨에 보내져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1917년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에 입학하지만 곧 제1차 세계대전이 터져서 참전하게되고, 1918년 전장에서 부상을 당하여 1919년 제대합니다. 그후 옥스포드 대학으로 돌아가서 Greek, Latin, 영문학, 철학과 고전을 공부했고 우등으로 졸업한 후,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중세 문학과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치면서 소설, 평론, 동화 들을 썼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에서 강사로 지내며 옥스포드 대학 교수이자 Lord of the Ring의 저자 J.R.R. Tolkien과 "The Inklings"이란 문학회를 만들어 친하게 지냈습니다. 29년간 Oxford대학에서 재직하다가 1955년부터 Cambridge 대학의 교수직을 맡게됩니다. 1950-56년 사이에 <나니아 연대기 The Chronicles of Narnia>를 쓰는데,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동화이며, 전세계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책 중의 하나입니다. 1956년 Helen Joy Davidman와 결혼하는데, 그녀는 공산주의자이자 무신론자이었습니다. 당시에 Joy가 영국 체류권을 따기위한 수단으로 결혼했다는 비난이 있었지만, 결혼생활은 견실했고 법적인 결혼식 후 기독교적 결혼식도 올렸습니다. 그 결혼식은 투병중인 아내 Joy의 병상에서 거행됐고, 잠간 회복했지만 결국 1960년에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루이스 자신의 건강도 악화되어 1963년 64세의 나이로 주님께로 돌아갔습니다.

C.S. 루이스의 마지막 인터뷰 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C.S.루이스가 BBC 방송에서 행한 대담 중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이랍니다. 그의 육성으로 직접 들어보셔요.




이건 C.S. Lewis: My Life's Journey라는 제목으로 David Payne이 루이스의 삶과 그의 시대를 연기한 것입니다.



이건 The Question of God: C.S. Lewis and Sigmund Freud라는 제목으로 행한 하버드 의대 심리학자 Armand Nicholi의 강연입니다.

2004년 가을 PBS에서 같은 제목으로 방영된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Part 1 <-- 이건 part 1의 1/7인데 잘 찾아다녀야 합니다.




책 목차

1. 옳고 그름, 우주의 의미를 푸는 실마리
--인간의 본성의 법칙
--몇 가지 반론
--이 법칙의 실재성
--이 법칙의 배후에 있는 것
--우리의 불안에는 이유가 있다.

2.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가?
--'하나님'과 경쟁하는 개념들
--하나님의 침공
--충격적인 갈림길
--완전한 참회
--실제적인 결론

3. 그리스도인의 행동
--도덕의 세 요소
--기본 덕목
--사회도덕
--도덕과 정신분석
--성도덕
--그리스도인의 결혼
--용서
--가장 큰 죄
--사랑
--소망
--믿음

4. 인격을 넘어서, 또는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첫걸음
--만드는 것과 낳는 것
--삼위이신 하나님
--시간과 시간 너머
--좋은 전염
--고집센 장난감 병정들
--몇 가지 부연 설명
--가장합시다
--기독교는 쉬울까, 어려울까?
--대가를 계산하기
--호감 주는 사람이냐, 새 사람이냐
--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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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November 13, 2008

St. Symeon the New Theologian: The Three Methods of Prayer



세 가지 기도 방법

St. Symeon the New Theologian

엄성옥, 필로칼리아 4 (서울: 은성, 2008), pp. 88-102.


그리스 교부들 중에서 신 신학자 시메온(949-1022)만큼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의 제자인 니키타스 스티타토스(Nikitas Stithatos)가 저술한 전기가 있을 뿐 아니라, 시메온 자신의 저술에서 생생한 개인적인 언급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정교회의 신비적 전통에서의 영적 아버지 제도의 중요성을 예증해준다. 시메온은 소아시아의 지방 귀족 가문 출신으로서 11살 때에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삼촌에게로 보내졌다. 부모들은 그가 장래에 황실에서 근무하기를 기대했던 듯하다. 그러나 그는 14세 때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스튜디오스 수도원 소속의 "경건한 시메온"이라는 수도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 일은 그의 미래와 관련하여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젊은 시메온의 영적스승이 된 경건한 시메온(St. Symeon the Studite, c.917-986/7)은 사제로 서임되지 않은 평신도 수도사였다. 동방 기독교에서는 종종 수도회에 속하지 않은 수도사들이 영적 지도 사역을 행했으며, 때로는 수녀들이나 수도사가 아닌 사람들도 영적 지도를 행했다. 신 신학자 시메온은 특히 사제가 아닌 수도사들이 고해성사를 받고 사죄를 행하는 것을 옹호하는 논문을 저술했다.

경건한 시메온의 지도를 받으면서 젊은 시메온의 기도 생활은 급속하게 발달했다. 그는 아직 세속생활을 하고 있던 20살쯤 때에 처음으로 피조된 것이 아닌 거룩한 빛의 환상을 받았고, 그 후 일련의 그러한 환상들을 받았다. 그는 다시 세속적인 생활을 하다가 977년에 스튜디오스 수도원에 수련수사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경건한 시메온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있는 데 분개한 그 공동체의 수도사들 때문에 그는 일 년이 못되어 그곳을 떠나야 했다. 영적 스승인 경건한 시메온은 그를 콘스탄티노플 근처에 있는 성 마마스(St. Mamas) 수도원으로 보냈다. 그는 이곳에서 수도사가 되었고, 980년경에 사제직에 서임되고 25년 동안 수도원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 수도원은 쇠퇴하고 있었지만, 그의 지도하에 크게 부흥했다 성 시메온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영적 스승으로 유명해졌고, 많은 유명한 평신도들이 그를 찾아와서 죄를 고백하고 조언을 구했다. 성 시메온은 자기의 지도를 받는 수도사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목자였다. 동시에 그는 표준을 높이 두고 따르는 "열성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는 수도사들이 자주 성찬을 받기를 기대했고. 경건한 시메온의 가르침을 좇아 성찬을 받을 때에는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지나친 기대 때문에 996-8년에 수도사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시메온은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과 화해하는 데 성공했다. 몇 년 후 그의 스승인 경건한 시메온이 사망했을 때 시메온은 공개적으로 그를 성인으로 기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수도원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교회 당국자들에게 고발했다. 시메온은 평신도 고해 성사에 관한 가르침 때문에 의심을 받았다. 이처럼 계속되는 공격 때문에 시메온은 1005년에 대수도원장 직을 사임했다. 그는 4년 후인 1009년에 총대주교와 성의회(Holy Synod) 앞에서 재판을 받고, 보스포로스 해안에 있는 팔로우키톤으로 유배되었다. 이 판결은 곧 취소되었고 그는 다시 주교직에 복귀되었지만, 그는 몇 명의 제자들과 함께 유배지에서 살다가 1022년 3월에 사망했다.

추종자들이 그에게 "신 신학자"라는 칭호를 부여한 것을 볼 때, 그는 매우 존경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여기에서 "신학자"라는 용어는 오늘날과 같은 학문적인 의미가 아니라 기도의 사람(a person of prayer), 직접적인 경험에 기초를 두고서 하나님을 보는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정교회에서 시메온의 시대 이전에 "신학자"라는 호칭은 주로 복음서 기자 요한, 그리고 동방교회에서 세 명의 위대한 고위 성직자들 중하나로 존경받는 인물로서 관상적인 시들을 저술한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에게만 사용되었다. 시메온이 "신 신학자"라고 불린다는 것은 그가 이 두 사람들과 함께 내적 기도의 전승에 대한 신실한 증인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메온은 이러한 경험적인 의미에서 "신학자"일 뿐 아니라 신비생활의 "선교사"이기도 하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상적인 연합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또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험들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받은 환상들에 대해 겸손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같은 죄인을 이처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위해서는 더 큰 긍휼을 행하실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가장 좋은 것이 여러분모두의 것이 될 것입니다."

성 마카리우스와 성 니코데무스는 성 시메온의 저술들 중에서 두 편을 이 책에 수록했다. 첫 번째 저술인 『사랑에 관하여』(On Love)는 시메온이 성 마마스의 대수도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수도사들에게 행한 설교들이나 교리문답 중 하나이다. 그는 여기에서 조지(George)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의 내면생활에 대해서 삼인칭으로 이야기하는데, 일반적으로 이 청년은 시메온 자신이라고 여겨진다. 조지라는 이름은 그가 수도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사용했던 세례명이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그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거룩한 수도사"라고 지칭한 그의 영적스승인 경건한 시메온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드러내준다. 젊은 시메온은 고행자 마가(Mark the Ascetic)의 글을 읽으면서 특히 "너의 양심에 귀를 기울이라"는 명령, 그리고 "성령의 능력들"에 대한 언급에 감명을 받았다.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 신 신학자의 가르침의 중심사상들 중 하나이다. 그는 최초로 하나님의 빛을 보면서 기쁨을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 묘사하면서, 그 일이 자신이 세상적인 분심거리들로 인해 번잡한 평신도 시절에 발생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외적인 상황과는 상관없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관상의 고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 작품인 『153편의 실질적이고 신학적인 본문들』(One Hundred and Fifty-Three Practical and Theological Texts)은 여러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복합적인 글이다. §§1-118은 신 신학자의 226편의 본문들 중에서 취한 것이고, §§119-52는 신 신학자의 스승인 경건한 시메온의 글이다. §153의 첫 부분은 니키타스 스티타토스가 저술한 신 신학자의 전기 §31에서 취한 것이다.

신 신학자의 저술들 중에서 취한 부분에서는 그가 즐겨 사용한 여러 가지 주제들이 언급된다: 거룩한 빛(§§68, 105-6), 눈물의 은사(§§67,69), 성령을 의식적으로 경험해야 할 필요성 (§85), 영적 스승의 사역(§§6-19, 38-9, 41). 수도사들에게 과거의 모든 연결고리들, 특히 가족들과 완전히 결별할 것을 요구한 데서 시메온의 엄격함이 분명히 나타난다(§§3-8). 한편 그는 개인의 소명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추상적으로 어떤 형태의 삶이 다른 형태의 삶보다 더 고귀하다고 말할 수 없다. 예를들면, 은둔 생활이 공주(公住) 생활보다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각 사람에게는 각기 개인적으로 부름을 받은 특별한 길이 가장 선하고 고귀한 삶의 형태이다(§§88-92). 사막에 거주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결혼하여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관상의 고지에 다가갈 수 있다.

경건한 시메온의 저술인 그 뒤의 본문에서는 스튜디오스 수도원만큼 조직적인 큰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 저자는 엄격한 가난, 자기 의지의 근절, 개인적인 관계에서의 단순성, 불필요한 분규에 얽히는 일을 피할 것 등을 강조한다. 그는 양심의 가책은 속죄의 고행이 아니라 즐거운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것(§140), 하나님의 빛을 보는 것(§150), 영적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의 중요성 (§§129, 141) 등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것들은 후일 그의 제자인 신 신학자 시메온이 발달시킨 주제들이다. 경건한 시메온은 사랑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사랑이 기도보다 더 위대하다"(§143)라고 표현한다. 신 신학자 시메온도 이 말에 반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6l).



신 신학자 시메온의 것으로 간주되는 글:

"세 가지 기도 방법"


St. Nikodimos of the Holy Mountain & St. Makarios cf Corinth,

The Philokalia.




개 론


『거룩한 기도와 경청의 방법』(Method of Sacred Prayer and Attentiveness)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짧은 글에서는 예수기도와 결합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정신 신체적 기법을 권한다. 이 글은 적어도 14세기부터 신 신학자 시메온의 저술로 간주되어 왔지만, 1927년 이후로 저자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하우세르(Irénée Hausherr)는 이 글과 니키포로스(Nikiphoros)라는 수도사의 논문 정신 신체적 기법을 어느 정도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깨어 있음과 마음을 지키는 것에 관하여』(On Watchfulness and the Guaring cf the Heart) 사이에 비슷한 구절들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니키포로스가 이 두 글의 저자라고 결론짓는다. 실제로 니키포로스가 『세 가지 기도 방법』의 저자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통적으로 신 신학자 시메온을 저자로 여기는 데에는 적어도 한 가지 참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만일 이 글이 시메온의 것이 아니라면, 그의 제자들의 것일 것이다. 당분간 이 글의 정확한 저술 연대와 출처는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 있다. 성 마카리우스와 니코데무스가 이 저서를 현대 그리스어로 의역했으며, 현재 우리의 번역본은 하우세르의 원본에 기초를 두고 있다.

『세 가지 기도 방법』의 중심 주제는 마음을 지켜야 할 필요성이다. 저자는 자신이 묘사하는 처음 두 가지 기도 방법은 불완전하며, 마음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위험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다. 이 글을 비롯하여 다른 글에서 사용되는 "마음"(heart)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감정과 성정(性情)뿐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완전체로 간주된 인간의 영적 중심을 의미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글에서 저자가 말하는 마음이란 "영혼의 모든 능력들이 존재하는 장소"이다. 『세 가지 기도방법』의 저자는 마음을 지키는 것을 돕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특징을 포함하는 정신 신체적 기법을 제안한다: 첫째는 턱을 가슴에 대고 배꼽을 응시하는 자세 , 둘째는 호흡을 제어하여 서서히 속도를 늦추는 것 ; 셋째는 지성이 내면을 탐색하면서 마음의 장소를 찾는 것. 이것은 예수기도와 병행하기 보다는 예수기도에 선행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실제로 예수기도를 행하기에 앞서 정신을 집중하는 것을 돕기 위한 선행 활동이 되어야 한다.

현대 서방의 저자들은 이 정신 신체적 기법을 요가나 수피즘에서 사용되는 방법들과 비교해왔지만, 그것들 사이의 유사한 점들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세 가지 기도 방법』의 저자는 이 기법을 특별히 기독론적인 배경 안에 둔다. 그것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기도를 할 준비를 갖추게 하는 데 있다. 그러한 기법을 잘못 사용할 때에는 육체적인 건강과 영적인 건강에 심각한 해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채택되어야 한다. 『세 가지 기도 방법』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있어서 잘못이 없는 확실한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적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정교회 내의 거의 모든 교사들은 정신 신체적기법은 노련한 교사의 개인적인 지도하에서만 실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육체적인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서도 예수기도를 완전히 실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간단히 설명된 기법은 인간에 대한 건전한 교리에 의존하고 있으며 신학적으로 옹호될 수 있다. 그레고리 팔라마스(St. Gregory Palamas)는 인간은 몸과 영혼의 통일체라고 지적하는데, 그것은『세 가지 기도 방법』의 서두에서도 분명히 진술된다. 몸은 우리의 완전한 개성의 본질적인 측면이므로 기도할 때에 등한시 되거나 무시하지 말고 역동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세 가지 기도방법

서문

There are three methods of prayer and attentiveness, by means of which the soul is either uplifted or cast down. Whoever employs these methods at the right time is uplifted, but whoever employs them foolishly and at the wrong time is cast down. Vigilance and prayer should be as closely linked together as the body to the soul, for the one cannot stand without the other. Vigilance first goes on ahead like a scout and engages sin in combat. Prayer then follows afterwards, and instantly destroys and exterminates all the evil thoughts with which vigilance has already been battling, for attentiveness alone cannot exterminate them. This, then, is the gate of life and death. If by means of vigilance we keep prayer pure, we make progress; but if we leave prayer unguarded and permit it to be defiled, our efforts are null and void.

기도와 경성警省(醒)과 관련된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영혼은 이것들에 의해서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떨어집니다. 이 방법들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위로 올라가지만, 부적절하고 어리석게 사용하는 사람은 아래로 떨어집니다. 깨어 경계하는 것과 기도는 몸과 영혼처럼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깨어 경계함은 죄와의 전쟁에서 정찰병처럼 선두에 섭니다. 그 뒤에 기도가 따르면서 깨어 경계함과 이미 교전하고 있는 모든 악한 생각들을 즉시 파하고 근절합니다. 주의를 집중하는 것만으로는 악한 생각들을 근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생사의 문 앞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 경계함으로써 기도를 순수하게 보존한다면 진보하지만, 기도를 지키지 않고 버려두어 더럽혀지는 것을 허용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헛되고 무익하게 될 것입니다.

Since, then, as we said, there are three methods of attentiveness and prayer, we should explain the distinctive features of each, so that he who aspires to attain life and wishes to set to work may with firm assurance select what suits him best; otherwise through ignorance he may choose what is worse and forfeit what is better.

경성과 기도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으므로, 생명을 얻고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알맞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각각의 방법의 특징을 설명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는 무지로 말미암아 좋은 것을 박탈당하고 좋지 못한 것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기도 방법

The distinctive features of the first method of prayer are these. When a person stands at prayer, he raises hands, eyes and intellect heavenwards, and fills his intellect with divine thoughts, with images of celestial beauty, of the angelic hosts, of the abodes of the righteous. In brief, at the time of prayer he assembles in his intellect all that he has heard from Holy Scripture and so rouses his soul to divine longing as he gazes towards heaven, and sometimes he sheds tears. But when someone prays in this way, without him realizing it his heart grows proud and exalted, and he regards what is happening to him as the effect of divine grace and entreats God to allow him always to be engaged in this activity. Such assumptions, however, are signs of delusion, because the good is not good when it is not done in the right way.

첫 번째 기도방법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서서 두 손과 두 눈과 지성을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며, 자신의 지성에 거룩한 생각들, 천상의 아름다움과 천군들과 의인들의 거처에 관한 심상들로 채웁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기도할 때에 거룩한 성경에서 들은 모든 것을 지성 안에 모아 정리하며, 하늘을 응시하면서 영혼을 고양시켜 거룩한 것을 갈망하게 하며, 때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런 식으로 기도하면서 자기의 마음이 우쭐대고 교만해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에게 발생하는 것을 거룩한 은혜의 결과라고 여기며, 항상 이러한 활동에 자신이 개입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방식으로 행해지지 않는 선은 선이 아니므로 그러한 태도는 망상의 표식입니다.

If, then, such a person is pursuing a life of stillness and seclusion, he will almost inevitably become deranged. And even if this does not happen to him, it will be impossible for him to attain a state of holiness or dispassion. Those who adopt this method of prayer have also been deluded into thinking that they see lights with their bodily eyes, smell sweet scents, hear voices, and so on. Some have become completely possessed by demons and wander from place to place in their madness. Others fail to recognize the devil when he transforms himself into an angel of light (II Corinthians 2:14); and, putting their trust in him, they continue in an incorrigible state of delusion until their death, refusing to accept the counsel of anyone else. Still others, incited by the devil, have committed suicide, throwing themselves over a precipice or hanging themselves. Indeed, who can describe all the various forms of deception employed by the devil? Yet from what we have said any sane person can understand the kind of harm that may result from this method of attentiveness. Even if someone who has adopted this method may perhaps avoid the evils we have mentioned because he lives in a community -- for it is solitaries who are especially subject to them -- none the less he will pass his entire life without making any progress.

그러한 사람이 침묵의 은둔생활을 추구한다면, 필연적으로 정신착란될 것이며,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해도 거룩함이나 무정념의 상태에 도달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방식을 채택하는 사람들은 미혹되어 자신이 육체적으로 빛을 보고 향기를 맡고 음성을 듣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귀신에게 사로잡혀 미쳐서 사방으로 배회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마귀를 알아보지 못하고(고후 11:14) 그를 신뢰하여 죽을 때까지 미혹되어 구제불능의 상태에 머물면서 어떤 사람의 조언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한, 마귀의 선동을 받은 사람들은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목을 매어 자살하기도 합니다. 마귀가 사용하는 다양한 형태의 속임수를 어떻게 모두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첫 번째 집중의 방법이 초래하는 해로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방법을 채택한 사람이 한 공동체 내에서 살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해악들을 피할 수 있다고 해도 – 은둔자가 이러한 해악에 빠지기 쉽습니다 - 그의 평생은 발전이 없을 것입니다(독거자들은 특히 그러한 해를 입기 쉽습니다).

두 번째 기도 방법

The second form of prayer is this. A person withdraws his intellect from sensory things and concentrates it in himself, guards his senses, and collects all his thoughts; and he advances oblivious of the vanities of this world. Sometimes he examines his thoughts, sometimes pays attention to the words of the prayer he is addressing to God, and sometimes drags back his thoughts when they have been taken captive; and when he is overcome by passion he forcefully strives to recover himself.

두 번째 기도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기도자는 지성을 감각적인 것들로부터 거두어들이고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하여, 자신의 감각들을 지키고, 모든 상념을 한곳에 모읍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의식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때로는 자기의 생각들을 성찰하고, 때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자신의 기도말에 귀 기울이며, 때로 상념들에게 사로잡힌 생각들을 되찾아오며, 또 자신이 상념에게 압도당할 때에는 회복하기 위해 힘껏 노력합니다.

One who struggles in this way, however, can never be at peace or win the crown of victory. He is like a person fighting at night: he hears the voices of his enemies and is wounded by them, but he cannot see clearly who they are, where they come from, and how and for what purpose they assail him. Such is the damage done to him because of the darkness in his intellect. Fighting in this manner, he cannot ever escape his noetic enemies, but is worn out by them. For all his efforts he gains nothing. Falsely imagining that he is concentrated and attentive, he falls victim unawares to self-esteem. Dominated and mocked by it, he despises and criticizes others for their lack of attentiveness. Imagining that he is capable of becoming the shepherd of sheep, he is like the blind man who undertakes to lead the blind (Matthew 15:14).

그러나 이런 식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결코 평화나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는 마치 컴컴한 밤에 싸우는 사람과 같아서, 원수들의 소리를 듣고 그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지만,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오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공격하는지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그는 지성 안의 어두움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피해를 입습니다. 이런 식으로 싸우기 때문에 그는 정신(理性으로 이해되는)적인 원수들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며, 그들에 의해 기력을 소모합니다. 그는 노력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이 집중하고 경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부지중에 자만에 빠집니다. 그는 자부심의 지배와 농락을 당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집중이 부족한 것을 멸시하고 비판합니다. 그는 자신이 양들의 목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마치 소경을 인도하는소경처럼 됩니다(마15:14).

Such a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second method of prayer, and everyone one striving after salvation can see what harm it does. Yet this second method is better than the first, just as a moonlit night is better than a night that is pitch-dark and starless.

이것이 두 번째 기도 방법의 특징입니다. 구원받은 후에 노력하는 사람은 이 방법이 끼치는 해로움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별도 없는 어두움보다는 달빛이 낫듯이, 이 두 번째 방법은 첫 번째 방법보다 낫습니다.

세 번째 기도방법

Let us now begin to speak about the third method of prayer, which is truly astonishing and hard to explain. For those ignorant of it, it is not only difficult to understand but virtually incredible, and there are very few to be found who practice it. It seems to me that it has deserted us along with the virtue of obedience. For it is the love of obedience that delivers us from entanglement with this evil world, rendering us free from anxiety and impassioned craving. It makes us wholehearted and unflagging in pursuit of our aim -- provided, of course, that we find an unerring guide. For if through obedience you make yourself dead to every worldly and bodily attachment, how can anything transient enslave your intellect? If you entrust all the care of your soul and body to God and to your spiritual father, no longer living for yourself or desiring the good opinion of others, what anxiety can distract you?

이제 세 번째 기도 방법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정말 놀랍고 설명하기 어려운 방법입니다. 그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믿을 수도 없으며, 그것을 연습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우리는 복종의 덕과 함께 이 기도 방법을 상실한 듯합니다. 복종에 대한 사랑은 악한 세상과 뒤얽혀 있는 우리를 구해주고 걱정과 상념에 물든 갈망으로부터 자유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우를 범치 않는 안내자를 발견하기만 한다면야, 우리로 하여금 지칠 줄 모르고 전심전력을 다해 목표를 추구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복종을 통해서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모든 애착에 대해 자신을 죽인다면, 어찌 무상한 것들이 당신의 지성을 사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거나 사람들의 좋은 평판을 끄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몸과 영혼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과 영적 아버지께 전적으로 맡긴 사람이 어찌 근심에 시달릴 수 있겠습니까?

This third method, then, destroys the invisible wiles of the demons, with which as with ropes they seek to drag down the intellect into all manner of devious thoughts. Set at liberty, the intellect wages war with its full strength, scrutinizing the thoughts insinuated by the enemy and with masterful dexterity expelling them, while the heart in its purity offers prayers to God. This is the beginning of a life of true seclusion, and those who fail to make such a beginning exhaust themselves in vain.

이 세 번째 방법은, 마귀들이 지성을 온갖 교활한 생각들로 끌어들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궤계들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순결한 마음(심장)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동안, 자유하게된 지성은 전력을 발휘해 싸우면서, 원수가 은근히 심어준 생각들을 면밀히 검사하여 완벽한 솜씨로 그것들을 몰아냅니다. 이것이 참된 은둔생활의 출발점이며, 이런 식으로 출발하지 못하는 사람은 헛되이 노력을 소진합니다.

The starting point of this third method of prayer is not to gaze upwards, to raise one's hands aloft, to concentrate one's thoughts and to call down help from heaven. These, as we said, are the marks of the first form of delusion. Nor does it begin, as the second method does, by keeping guard over the senses with the intellect, while failing to observe the enemies who attack from within. In such a case, a person is struck by the demons instead of striking them; when wounded he is unaware of it; taken captive, he cannot retaliate against his captors. His enemies constantly attack him, and from behind and even face to face, and fill him with self-esteem and arrogance.

이 세 번째 기도 방법의 출발점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생각을 집중하며 하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첫 번째 형태의 허상의 표식들입니다. 또 그것은 두 번째 방법처럼 내면에서 공격하는 원수들을 관찰하지 못한 채 지성을 사용하여 감각을 지킴으로써 시작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행하는 사람은 마귀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귀들에게 공격 당하게 되며, 상처를 입어도 의식하지 못하며, 잡혀도 자기를 사로잡아오는 자에게 반격하지 못합니다. 원수들은 끊임없이 배후에서, 심지어 직접 대면하여 공격하면서 그에게 자부심과 오만을 채워줍니다.

If you desire to embark on this light-giving and joyful task, begin as follows. You must first practice exact obedience, as described above, and so act always with a pure conscience; for without obedience it is impossible for your conscience to be pure. And you must keep your conscience pure in three respects: first, with respect to God, you must keep your conscience pure by refraining from doing anything that conflicts with the worship due to Him. With respect to your spiritual father do everything he tells you to do, neither more nor less, and be guided by his purpose and will. With respect to other people, you must keep your conscience pure by not doing to them anything that you hate (Tobit 4:15) and that you do not want them to do to you. With respect to material things, you must take care not to misuse them, whether food, drink, or clothing. In brief, do everything as if you were in the presence of God, so that your conscience does not rebuke you in any way.

만일 이 빛을 주는 기쁨에 찬 임무에 착수하기를 원한다면, 다음과 같이 시작하십시오. 우선 위에서 묘사된 것처럼 항상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엄격한 복종을 실천하십시오. 복종 없이는 양심이 깨끗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서 양심을 깨끗이 보존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상충되는 어떠한 일이라도 행함이 없도록 깨끗한 양심을 보존해야 합니다. 둘째는 영적 아버지에 대하여는, 그분이 명하는 것을 더하거나 감하지 말고 그대로 행하며 그분의 목적과 뜻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셋째는 사람들과 물건들에 대해 양심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당신이 싫어하는 일 및 당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그들에게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토빗 4:15). 물건들과 관련해서는,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이나 의복을 남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하여 양심이 당신을 책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영문번역 없음>>

집중의 참된 특성 및 그 근거를 설명했으므로, 이제는 그것의 특징들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겠습니다. 바르고 참된 집중과 기도란 마음이 기도하는 동안 지성이 마음을 지켜 돌보는 것입니다. 지성은 항상 마음 안에서 순찰해야 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관대하시다는 것을 마음 안에서 맛본(cf. 시 34:8) 지성은 마음을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며, 베드로처럼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마 17:4)라고 말할 것입니다. 지성은 항상 마음 안에 깨어 있으면서 원수가 심어주는 생각들을 거절하고 몰아낼 것입니다. 이 수행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모질고 어려운 일인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이것은 입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경험은 있지만 아직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숨막히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이 기쁨을 맛본 사람은 사도 바울처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5)라고 외칩니다.

교부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마 15:19-20)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또 그들은 잔과 대접의 겉뿐 아니라 안도 깨끗이 하라고 명하신 주님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마 23:26). 그들은 마음을 지킴으로써 다른 모든 덕을 소유할 수 있지만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덕도 굳게 세워질 수 없다고 확신하고서, 모든 형태의 영적 수고를 포기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이 임무에만 전념했습니다. 어떤 교부들은 이 수행을 마음의 정적이라고 표현했고, 어떤 사람들은 경청이라고 표현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부르며, 어떤 사람은 깨어 경계하여 물리침 이라고 표현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생각들을 조사하고 지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어쨌든 그들 모두 자신의 마음 밭을 경작했고, 거룩한 만나를 먹었습니다(cf. 출 16:15).

전도서에서는 이것을 언급하여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며"(전 11:9), 마음에서 노염을 물아내고"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전 10:4)고 말합니다. 주님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이며"(마 15:19); "근심하지도 말라" (눅 12:29)고 말씀하셨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다" (마 7:14)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마5:3), 다시 말해서, 세상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말했고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마음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엡 6:12)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고행자 마크, 요한 클리마쿠스, 헤시키우스, 시내 산의 필로테우스, 은둔자 이사야, 바르사누피우스, 그리고 『교부들의 낙원』(The Paradise of the Fathers)이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거룩한 교부들도 마음을 지키는 것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In short, if you do not guard your intellect you cannot attain purity of heart, so as to be counted worthy to see God (Matthew 5:18). Without such watchfulness you cannot become poor in spirit, or grieve, or hunger and thirst after righteousness, or be truly merciful, or pure in heart, or a peacemaker, or be persecuted for the sake of justice (Matthew 5:3-10). To speak generally, it is impossible to acquire all the other virtues except through watchfulness. For this reason you must pursue it more diligently than anything else, so as to learn from experience these things, unknown to others, that I am speaking to you about. Now if you would like to learn also about the method of prayer, with God's help I will tell you about this too, in so far as I can.

간단히 말해서, 지성을 지키지 않으면 깨끗한 마음을 획득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cf. 마5:18). 깨어 경계하지 않으면 심령이 가난해지거나 애통하거나 의를 갈망하거나 온유하거나 마음이 깨끗해지거나 화평케 하는 자가 되거나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을 수 없습니다(cf. 마 5:3-10). 일반적으로 말해서, 깨어 경계하지 않으면 나머지 모든 덕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것,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배우려면 무엇보다 깨어 경계함을 더욱 부지런히 추구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기도의 방법에 대해서도 배우기를 원한다면,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아는한 힘껏 그것에 대해서 말해주겠습니다.

Above all else you should strive to acquire three things, and so begin to attain what you seek. The first is freedom from anxiety with respect to everything, whether reasonable or senseless -- in other words, you should be dead to everything. Secondly, you should strive to preserve a pure conscience, so that it has nothing to reproach you with. Thirdly, you should be completely detached, so that your thoughts incline towards nothing worldly, not even your own body.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획득함으로써 당신이 구하는 것을 달성하기를 시작하십시오.
첫째는 이성적인 것이든지 감각없는 것이든지 모든 사물과 관련하여 근심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둘째, 깨끗한 양심을 보존하여 스스로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셋째, 완전히 초연함으로써 당신의 생각들이 세상에 속한 것, 심지어 자신의 육신조차 지향하지 않게 되어야 합니다.

Then sit down in a quiet cell, in a corner by yourself, and do what I tell you. Close the door, and withdraw your intellect from everything worthless and transient. Rest your head on your chest, and focus your physical gaze, together with the whole of your intellect, upon the center of your belly or your navel. Restrain the drawing-in of breath through your nostrils, so as not to breathe easily, and search inside yourself with your intellect so as to find the place of the heart, where all the powers of the soul reside. To start with you will find there darkness and an impenetrable density. Later, when you persist and practice this task day and night, you will find, as though miraculously, an unceasing joy. For as soon as the intellect attains the place of the heart, at once it sees things of which it previously knew nothing. It sees the open space within the heart and it beholds itself entirely luminous and full of discrimination. From then on, from whatever side a distractive thought may appear, before it has come to completion and assumed a form, the intellect immediately drives it away and destroys it with the invocation of Jesus Christ. From this point onwards the intellect begins to be full of rancor against the demons and, rousing its natural anger against its noetic enemies, it pursues them and strikes them down. The rest you will learn for yourself, with God's help, by keeping guard over your intellect and by retaining Jesus in your heart. As the saying does, "Sit in your cell and it will teach you everything."

그 다음에는 조용한 골방에 홀로 앉아서 다음과 같이 행하십시오. 문을 닫고, 무가치하고 덧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지성을 거두어들이십시오. 그 다음에는 고개를 숙여 턱을 가슴에 닿게 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시선을 배꼽에 두십시오. 코를 통해 들이쉬는 호흡을 억제하면서 지성으로 하여금 내면에서 영혼의 모든 능력들이 거주하는 장소인 마음(심장)을 찾아보게 하십시오. 우선 그곳에서 어둠과 꽤뚫을 수 없는 물질(impenetrable density)을 발견할 것입니다. 밤낮으로 이것을 꾸준히 실천하면, 신기하고도 끊이지 않는 기쁨을 발견할 것입니다. 지성은 마음(심장)의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 전에 알았던 것들이 무(無)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지성은 마음 안에서 광활한 공간을 보며, 자신이 전적으로 명석하고 온전히 분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때부터는 어느 쪽에서 산만한 생각이 나타나든지 그것이 완성되어 형태를 취하기 전에, 지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것을 몰아내고 소멸시킵니다. 이때부터 지성은 마귀들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차기 시작하며, 이성적으로 분별 가능한 원수들에 대해 본성적인 분노를 일으키면서 그것들을 추적하여 쓰러뜨립니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당신이 계속 지성을 지키고 경계하고 마음(심장)속에 예수님을 모심으로써 스스로 배울 것입니다. "골방에 머무십시오. 그러면 골방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Q&A:

질문 : 왜 수도사는 첫째 형태와 둘째 형태의 경계에 의해서 온전함을 회득할 수 없습니까?

대답 : 왜냐하면 적절한 순서를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 클리마주스는 이 방법들을 사다리로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정념들을 죽이고, 어떤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시편찬송을 실천하면서 보내고, 어떤 사람은 기도에 헌신하며, 또 어떤 사람은 깊은 관상에 집중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 살펴볼 때에는 사다리를 사용하여 유추해봅시다.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은 꼭대기에서 시작해서 내려오지 않고 바닥에서 출발하여 위로 올라갑니다. 그는 첫째 계단을 오른 후에 둘째 계단을 오르고 차례로 계속 올라갑니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사람으로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성장하는 어린이들처럼 우리 앞에 놓인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하여 한 단계씩 전진하다보면 마침내 장성한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될 것입니다.

수도 상태의 첫 단계는 정념을 억제하는 것이며, 이는 초심자들의 단계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여 사춘기에서 청년기로 진보하는 두 번째 단계는 부지런히 시편 영창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정념들이 억제되고 매장되었을 때에 실천하는 시편 영창은 혀에 즐거움이 되고 하나님이 영접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방 땅에서. 즉 정념이 물든 마음은 여호와께 찬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cf. 시 137:4). 이것이 진보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표식입니다.

영적으로 청년기에서 성인 단계로의 변화를 나타내는 특징인 세 번째 단계는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충분히 진보한 사람들의 단계입니다. 장성한 사람이 사춘기 소년이나 청년들과 다르듯이, 기도와 시편영창은 다릅니다.

영성생활에는 네 번째 단계. 즉 머리카락이 희어지는 노년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관상에 몰두하는 것을 의미하며, 온전한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그리하여 사다리의 꼭대기에 도착하여 여정이 끝납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정하시고 배열하신 상태이므로, 어린아이는 사다리의 첫째 계단에 올라가고 계속하여 네 계단을 올라 온전함에 이르지 않고서는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영적 거듭남을 원하는 사람이 빛을 향해 오르는 첫 단계는 정념들을 죽이는 것, 다시 말해서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지키지 않고서는 정념들을 죽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단계는 시편 영창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정념들에게 저항함으로써 그것들을 죽여 매장한 후에,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향한 열망이 지성을 불태우기 때문입니다. 이 열망으로 인해 힘을 얻은 지성은 마음을 둘러싸서 안으로 들어오려 하는 산만한 생각들을 집중과 경청으로 물리칩니다. 이처럼 지성은 둘째 단계, 즉 경청과 기도의 단계에 전념합니다. 이것은 악한 영들을 자극하며, 정념의 바람은 마음 깊은 곳을 거세게 휘젓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원함으로써 악한 영들이 완전히 정복되며, 소동은 마치 밀랍이 불에 녹듯이 사라집니다. 마귀들은 마음 밖으로 쫓겨났지만 감각을 통해서 외적으로 지성을 어지럽힙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피상적으로만 지성을 괴롭히기 때문에, 지성은 곧 평온함을 되찾습니다. 그러나 지성은 결코 마귀들의 공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자유는 완전히 장성한 사람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 완전히 초연하며 쉬지 않고 마음에 집중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집중과 경청을 획득한 사람들은 그 후에 조금씩 노년기의 지혜, 즉 관상의 단계로 상승합니다. 이것이 온전한 사람들의 단계입니다.

이 모든 단계를 적절한 시기에 순서대로 실천하여 완성한다면, 먼저 당신의 마음에서 정념이 제거될 것이며, 그 후에 완전히 시편 영창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감각들로 말미암아 일어나서 지성의 표면을 어지럽게 하는 악한 생각들을 대적할 수 있으며 영적인 눈과 육신의 눈으로 하늘을 응시하면서 순수하게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들이 공중에 매복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가끔씩만 위를 응시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깨어 경성함을 통해서 정화되는 것뿐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와 열매도 거룩할 것입니다(cf. 롬 11:16). 그러나 만일 앞에서 말한 순서를 따르지 않은 채 영적인 것을 보려고 두 눈과 지성으로 하늘을 바라본다면, 진리가 아니라 환상을 볼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아직 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청의 첫 번째 방법과 두 번째 방법은 우리를 진보하게 하지 못합니다. 집을 지을 때에 기초를 세우기 전에 지붕을 얹지 못합니다. 먼저 기초를 놓은 후에 벽을 쌓고 마지막에 지붕을 얹습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집의 영적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지키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정념들을 죽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영적인 집의 벽을 쌓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외적인 감각에 의해서 우리를 대적하는 악한 영들의 소동을 둘째 형태의 경청을 통해서 물리쳐야 하며, 되도록 신속하게 그것들의 공격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 후에 지붕을 얹어야 합니다. 즉,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하고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적 인 집이 완성됩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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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November 10, 2008

The Philokalia - 예수기도의 삼단계


Lord Jesus Christ, Son of God, have mercy on me, the sinner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다음은 한국러시아정교회 싸이트에서 퍼온 글: 예수의 기도; 필로칼리아


예수기도의 성서적 근원


  • 기도의 간단 명료함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 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마6:7 표준새번역)

  • 예수기도는 주님의 이름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성서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은 그의 이름에 있다고 말합니다. 구약성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열성적으로 부르며 호소하면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고 쓰여있습니다.

    히브리 말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다 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신 예수님은 인성을 가지신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지막 이름입니다. 예수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고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이들 모두가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라고 쓰여 있습니다.(빌2:9-10)

    이 이름으로 마귀는 쫓겨나가고 (눅10:17), 기도가 응답 받고(요14:13-14),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습니다(행전3:6-7). 예수님의 이름은 그치지 않는 영적인 힘입니다.

  • 예수기도의 말들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여리고 근처 길가에 앉아있던 소경이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눅18:38), 나병환자 열 사람이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였다.(눅17:13)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눅18:13).

  • 예수기도는 우리들의 죄를 인식하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방황하는 것을 알게하는 영적인 여행을 떠나게 합니다. 예수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이 절대로 필요함을 인정하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요일1:8).


예수기도의 삼단계

기도는 살아있는 현실이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므로 어떠한 분석이나 분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기도를 통하여 영적 생활을 성숙시키고자하는 이들에게 넓고 일반적인 안내를 위해서 19세기 러시아의 수도자 은둔자 훼오판은 기도를 수행하는 단계를 셋으로 구분을 지었습니다.


1. 말로하는 기도 또는 입술의 기도. 간단한 암송의 단계
상당히 중요하지만 이러한 기도의 단계는 우리에게 있어서 외적이고 첫 단계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영혼은 인간의 마음과 심장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2. 마음의 혼란 없이 기도하는 단계

기도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마음의 혼란없이 기도하게 되는 단계에 도달합니다. 훼오판은 "마음이 말에 집중되어 있는" 기도라고 말하였습니다.

3. 심장의 기도가 되는 단계
이 상태에서는 기도가 우리가 하는 어떤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이 됩니다. 그러한 기도는 성령의 선물이고 탕아처럼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눅15:11-32). "그리고 또 여러분은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갈4:6) 심장의 기도인 예수기도는 위의 성경말씀처럼 성령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예수기도의 열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교 영성의 목표입니다. 그것은 우리 한 가운데 있는 왕국의 현존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무명 러시아 작가의 <순례자의 길 The Way of a Pilgrim>에는 예수기도가 두가지 구체적인 효과를 나타냄을 알려줍니다. 첫째로, "내가 마음속 깊이 기도할 때 내 주의의 모든 것이 기쁘고 경이롭게 보였다. 나무들, 풀들, 새들, 공기, 햇빛은 그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을 올리고 있는 듯 했다."라고 합니다. 둘째로, 기도는 우리와 우리의 동료 인간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킵니다. 또,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다시 나는 내 방랑길을 출발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더 이상 전처럼 걱정에 가득 차서 걷지 않는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나를 기쁘게 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내게 해를 끼치면 나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는 얼마나 달콤한가'라고 생각하면 모욕과 분노는 모두 사라지고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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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November 5, 2008

The Way of a Pilgrim


니이버가 <그리스도와 문화>의 말미에 말하기를;

역사란 하나님의 능력있는 행위와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기술한 이야기이다. 영원이라는 것은, 시간 이전의 하나님의 행동이나 시간 이후의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보다도, 시간 안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영생이란 지금, 여기 있는 실존의 특질quality 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생활이 창조에서 주어진 것을 보존한다거나 최후의 속량에서 주어질 것을 위한 준비라기보다도, 현재의 갱신에 대한 하나님의 가능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인간의 응답'을 구체화한 행위를 '기도'라고 한다면, 우리가 지금-여기에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영생의 삶을 누리며, 현재의 갱신에 대한 하나님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은혜의 통로가 또한 기도입니다.

니이버는 계속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현재가 곧 역사라는 견해를 가지고, 창조와 문화의 세계가 최후로 종말을 고한다는 데 대한 기대보다도, 만물을 끌어올려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더욱 민감하다. 그들(개변주의자들)의 표현방식은 시간적이 아니라 공간적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운동은 상향적인 운동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과 흠모의 힘찬 파도에 의하여 높이 올려진 인간의 영혼과 행위와 사상의 상승rising 이다!! 즉 하나님의 영광 안에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 있는 변화된 인간의 삶이다. 인간으로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자신을 위하여 몸과 영혼을 가진 인간을 만드시고,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세상으로 하여금 그를 통하여 구원받게하신 하나님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내면에 깊이 침잠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웃을 발견하고 세상을 밝히는 빛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습니다.

만물을 끌어올려서 변화시키는 logos의 우리가운데 거하심!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과 흠모의 힘찬 파도에 의하여 높이 들려진 우리 인간의 영혼 행위 사유의 상승!! 이를 교통케 하시는 성령님의 권능과 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


11월 독서회의 책은: 기도:영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수의 기도 - 오강남 번역 입니다. 소개는 링크에서 보시고, 이와 같은 책 The Way of a Pilgrim 을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의 원전은
The Philokalia 라고 하는 동방정교회 교부(수도사)들의 기도에 대한 묵상을 모아놓은 책으로서 기도와 영성에 대한 오리지날 저작 중의 하나입니다.


다음은 동방정교회의 chant입니다.

Russian Orthodox chant 순례자를 발견하셔요~
Russian Orthodox Chant in Lent (부활절 전 40일 동안의 금식기도 기간 동안)
Orthodox chant 14 Divna 뭐라카는지 몰라서 기도에 방해도 안되고^^ 매력적인 천사의 목소리!
Orthodox chant 시편 1편 Blessed is the Man 정교회에서 듣는 컬컬한 (진품)목소리, 위의 목소리는 un오쏘독씨!!

중세유럽의 순례자들의 노래 모음: The Way of the Pilgrim: Medieval Songs of Travel

Como Poden Per Sas Culpas
Seigneur, sachiez qui ore ne s'en ira
Cantiga de Santa María 189, Ben pode Santa María guarir de toda poçon
Clauso chronos
Bonum est confidere

Bache Bene Venies
Los Set gotxs recomptarem

중세 음류시인의 시를 현대음악으로 만든 (秘敎스럽지만) 작품 중엔 단연 Carl Orff의 Carmina Burana, 그 중 유명한 것:

O Fortuna
In Trutina
Tempus Est Iocundum 이걸 중세 mandolin으로 연주하면? 춤과 함께!
Ecce Gratum
Tannz
Florest Silva
Chramer, gip die varwe mir

내용은 포도주와 여자와 사랑에 대한 것으로서, 1280년대 Benedictine monastery of Beuren에서 발견된 Latin, Old German, Old French로 쓰여진 단편 시들이랍니다. 궁금하시면 여기에 영문번역을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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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16, 2008

그리스도와 문화 - 중용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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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버는 3장 말미에 [2장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와 [3장 문화의 그리스도]에서와 같이 서로 극과 극인 듯한 무리들의 공통점을 분석하며 신학적 변론을 하는 와중에 "삼위일체"를 언급합니다.

니이버는 말하기를;
영지주의자들은 삼위보다도 더 많은 수를 요구하였고, 자유주의자들은 더 적은 수를 요구하였다. 이 노선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 예수를 인간 안에서 일하는 내재적, 신적神的 정신(spirit)과 일치시키려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내재적, 합리적, 정신적, 도덕적인 원리가 자연과 그 자연을 산출하고 지배하는 능력 등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문화적 윤리적 생활의 문제를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진과 불 속에 나타난 능력과 조용히 작은 목소리로 인간의 마음속에 속삭이듯 말하는 그분 사이에는 어떤 일치점이 있는 것인가? 인간이 자연에 직면할 때 그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자는 무자비하고 맹목적인 힘인지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인지를 구명해야하는 문제이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전능한 창조주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문화를 보전하려는 사람들의 사변적인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이고 아주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종말론적 비젼, 즉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무자비하고 캄캄한 멸망의 운명이 자기의 이상적 세계 위에 임박해 있음을 보았을 때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과학과 그의 건축은 자연의 주어진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도저히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에도 일어나는 문제이다... 이 도전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다" 라고 말하는 것은 다만 3분의 1의 진리만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니이버는 4장에 들어가며 "중립적 교회 the church of the center" 라는 말을 사용하여 그의 "신앙고백"을 "삼위일체"적으로 합니다. 그 입장을 토대로 4,5,6장을 펴나갑니다. 오늘날 프린스톤 연합교회에서 우리가 고백해야할 신앙의 공통분모를 잘 드러내지 않았는가 하여 여기에 요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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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문제는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중립적 교회는 이 조항과 더불어 그리스도와 문화에 대한 토론 속에 모든 문화의 근거가 되는 자연의 개념을 도입한다. 그런데 이 자연은 선한 것이요, 하나님께서 올바로 정돈하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이 하나님에게 복종하셨고 또 이 하나님과 분리할 수 없도록 연합되신 분이다.

이 신념이 지배하는 곳에는 그리스도와 세상이 단순히 서로 대립되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문화로서의 "세상"은 하나님 없는 영역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2) 인간은 그 본성으로 볼 때 하나님에게 복종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이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에게서 분리된 그리스도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된 자연의 창조주도 아니다. 그들(중립적 교회)이 의미하는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하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복종은 자연적 문화적 인간의 구체적 현실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활동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인간의 지성과 의지를 사용하지 않은 채, 순수히 본능적인 차원에서 일어날 수 없으며, 또한 인간은 필연의 세계에 살면서도 자유를 지니고 살아야하는 피조물인 때문에, 문화란 그 자체가 하나님의 하나의 요청 ein Postulat 이다. 즉, 하나님에게 복종함으로써 많은 가치를 추구하게 되어있다.

중립적 교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주요 운동의 또 하나는;
(3) 죄의 보편성과 근본성에 대한 어떤 신념의 합치이다.

2장의 문화에 대립하는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거룩한 공동체를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노력한다. 반면, 3장의 문화의 기독교인들은 죄가 인간 인격의 심연에까지 도달한다는 것을 부인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용의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자기 자신 안에서는 개인적으로 보나 공동체적으로 보나, 거룩함을 발견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4) 은혜와 율법에 대하여는;

은혜의 우위성과 복종하는 행위의 필요성에 대하여 인정할 때에, 인간의 문화적 활동을 하나님의 은혜에서 분리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은혜로써만 가능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들은 은혜의 경험을 문화 활동에서 분리시키지도 못한다. 인간 사회에서 보이는 형제에게 봉사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그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이런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립적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와 문화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통일된 한 그룹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니이버는 거기에 적어도 세가지 구분된 부류가 있다고 하며 (i) 종합론자 (ii) 이원론자 (iii) 개변주의자conversionists 로 나눕니다.

(i) 종합주의synthetic or architectonic자는 그리스도와 문화를 둘 다 긍정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이 세상과 저 세상에 함께 주가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구분선을 명백하게 보존합니다. 그리함으로써 주 예수는 하나님이면서 사람이어서 한 인격 안에 두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두 본성은 서로 혼동되지도 않는다는 역설적인 신념을 고백합니다. 그들은 쉽게 가치존재에 종속시키지도 않으며 가치에 존재를 종속시키지도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logos 이면서 동시에 주님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리스도와 문화를 함께 긍정할 경우에 그들의 충성을 요구하는 그리스도는 그 성격에 있어서 안이한 화해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그리합니다.

종합주의자에게 문화는 그 기원에 있어서 신적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이며, 거룩하면서도 범죄적이며, 필연과 자유를 함께 가진 영역이며, 이성과 계시가 함께 적용되는 장소입니다. 종합주의자는 그리스도의 의미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3장 문화의 그리스도]론자와 구별되며, 동시에 문화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2장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론자들과 갈라서는 것입니다.

(ii) 한편 이원론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문화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구별하면서 동시에 그 둘을 결부시킬 정당한 이유를 추구하고 있는 점에서는 종합론자와 같습니다.

이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선 자리,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생활의 근본 과제는 기독교 공동체와 이교적 세상 사이에 구분선을 그을 때 부딪치는 문제가 아니며, 인간이 자연과 충돌할 때 그리스도가 문화의 정신적 세력 편에 서 있는 분이라고 할 때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원론자는 충돌 가운데 살고 있으며, 한 위대한 논쟁점 앞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충돌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충돌입니다. 즉 문제점이 하나님의 의와 나의 의 사이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모든 활동, 우리의 국가와 우리의 교회, 우리의 이교적 또는 기독교적 사업, 이런 모든것들과 더불어 한편에는 우리가 서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하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다른 한편에 서 있습니다. 이런 상황 아래서 보면, 그리스도와 문화에 대한 문제는 사람이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물을 질문인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와 이교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들의 논리적 출발점은 하나님과 인간의 전쟁에서 생긴 화해와 용서의 위대한 행위입니다. 그 행위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 부릅니다. 여기에 충돌이 있었고 또 지금도 있다는 사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죄라는 사실이 이 출발점에서부터 이해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지식은 자명한 이성의 진리로 그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은혜에 대한 신앙과 그와 상관된 죄에 대한 지식은 십자가를 통해 옵니다.

하나님 자신인 진리와 선의 형상을 모독하며 파기하려고 꾀하는 인간들이 살고있는 이 무서운 세상을 진지하게 직면해 보지 못한 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신의 자비와 인간의 도덕적 과오를 안이하게 수락하는 것과는 온전히 다른 질서에서 나온 것이라 합니다.

이원론자의 출발점인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에서 이 새로운 출발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은혜와 죄에 관한 그 근본적인 상황이 변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은혜는 하나님 안에 있고 죄는 인간 안에 있습니다.하나님의 은혜는 만나와 같은 능력이 아니며 인간의 행동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중개될 수 있는 어떤 실체가 아닙니다. 은혜는 언제나 하나님의 행동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대결하는 역사적 완충지대를 넘어서 인간에게 도래한 화해의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스러운 그 무엇이 그 은혜로운 행동에 감격한 바울이나 루터의 응답 속에 반사되더라도, 바울이나 루터 자신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본다 할지라도 한 반영reflection으로 밖에는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은혜스러움을 사람들이 자기 자신 안에 찾으려 할 때에는, 그것이 즉석해서 사라지고 맙니다. 마치 내가 나의 은인을 배반하고 그것이 나의 덕행이라고 생각할 때, 그 은혜끼친 이에대한 나의 감사가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주를 알고 그에게 나아와 그를 신뢰하는 믿음은, 믿는 그 자신의 본래의 가능성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가 신실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에 있어서 사람이 그 화해의 말씀을 들은 후의 상황도, 듣기 전 상황과 마찬가지로, 은혜는 온전히 하나님 편에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인 동시에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죄는 사람 안에 있는 것이요, 사람은 죄 안에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영광의 주 앞에 설 때, 인간들의 모든 사업과 일을 주님의 선의 표준에서 보면 아주 부적당한 것일 뿐 아니라, 더럽고 타락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종합론자인 클레멘트와 토마스 아퀴나스와, 바울과 루터와 같은 이원론자가 다른점은 인간의 모든 행위에 부패와 타락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는, 철학자의 지혜와 무식자의 우둔함이 다를 것이 없으며, 살인자의 죄와 법관의 처형 사이에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의 업적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되어지는 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원론자는 다른 사람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범한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주장을 포기하기는 하지만). 다만 자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나누일 수 없이 자기와 연합되어 있는 전 인류, 그리고 또 자기 자신에게 내리고 있는 심판에 대하여 증언할 뿐입니다.

문화에 대해서 이원론자는, 그 자신도 그 문화에 속해있는 자로서 도저히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문화 안에서, 또 문화로 말미암아 그를 붙들어 주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은혜로 이 죄악 중에있는 세상을 붙들어 주지 않으신다면 이 세상은 잠시라도 존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원론자는 역설paradox이라고 보여지는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 편에서서 하나님을 만나지만, 그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편이 아닌 저쪽에서 오는 것으로 설명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긴장 속에 있는 그는 계시와 이성, 율법과 은혜, 창조주와 구속주 등의 대립된 형태의 용어로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그의 말이 역설적일 뿐 아니라 그의 행위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는 율법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 아래 있는게 아니라 은혜 아래 있습니다. 그는 죄인이지만 의롭습니다. 그는 의심하는 자 같으나 믿는 자입니다. 그는 구원의 확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칼날 위로 걸어가는 것 같이 불안정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것이 새로와졌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맨 처음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그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그 자신을 숨기고 계십니다. 신자는 그가 믿는 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걸어가며, 보는것으로 걷는 것이 아닙니다!

이원론자들의 핵심용어; 율법과 은혜,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

(iii) 개변주의자conversionist의 이해는 이원론자와 가까운데,

그들의 기독론은; 그리스도가 새 율법을 주신 분이라는 것보다도 그가 속죄주라는 것을 주장하며, 하나님은 인류의 최선의 정신적 원천을 표징하는 분이라는 것보다도 인간이 만나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업은 공간적, 외부적인 인간 행동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는 인간의 마음을 심사하며 잠재의식적 삶을 심판합니다. 그는 인간의 가장 완강하고 독살스런 병, 죽음에 이르는 병-키에르케고르Kierkegaard-을 고칩니다. 그는 인간의 가장 깊은 데 숨어있는 번식력이 강한 죄, 즉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불신, 무애無愛, 절망을 용서합니다.

그리스도는 이것을 이념과 권고와 법을 제공하는 것으로 단순화시키지 않으며, 깊은 겸손으로 인간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논증하기보다도 무덤에서 다시 살아남으로써 그것을 시위합니다.

개변주의자가 이원론자와 구별되는 점은 그들이 문화에 대하는 태도가 더 적극적이요 희망적이라는 점입니다. 이 입장은 세가지 신학적 신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1) 창조

창조에 비해 속량을 강조했던 이원론자와는 달리, 개변론자는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하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라는 두 주제를 모두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통치 밑에서 창조적인 능력과 하나님 말씀의 질서화에 의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창조에 대한 큰 관심은 이원론자가 등한시한 기독론의 일면을 발전시켰습니다. 한편으로는 말씀logos 즉 하나님의 아들이 창조에 동참하였다는 것을 강조하였는데, 그것은 한 옛날에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능력 안에 있는 만물의 논리적 순간적인 시초와 직접적인 기원이라는 의미에서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들의 성육신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큰 관심을 가짐으로써, 다만 그의 죽음 부활 그리고 권능으로 올 재림에 나타난 구속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말씀, 창조의 세계 속에서 아버지의 사업을 행하는 아들이 그의 질서화행위 없이는 있어본 적이 없는 인간 문화 속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2) 창조 때의 선善에서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

이원론자가 창조와 타락을 거의 영지주의적으로 표시할 수 있을 만큼 근접시킨데 반해, 개변주의자는 타락을 창조와 구분합니다. 이원론자에게 문화제도는 부패를 막기위한 질서, 무정부의 예방, 육신생활의 지도 등 일시적인 문제들에만 관계된 것이라고 합니다. 개변주의자는 인간의 근본적인 타락을 주장하는 교리에 찬동하는 점에서 이원론자와 합치되지만, 그들은 타락을 창조로부터 구분하며 또한 육체적 생명의 상태로 부터 구별하는데 극히 날카롭습니다. 타락은 창조의 반대이지, 결코 그 계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에게 미치는 결과는 인간 편에만 나타나지, 하나님 편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선한 본성은 부패해졌습니다. 이것은 존재해서는 안될 사물처럼 악한 것이 아니라, 비틀어지고 꼬이고 방향이 잘못된 것입니다.

문화는 부패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악이 아니라 전도된 선입니다. 그러므로 문화는 개변의 문제이지 새 창조로 대치할 문제는 아니라 합니다. 물론 그 개변이 너무나 근본적이어서 일종의 신생을 초래합니다.

(3) 역사관

역사가 근본적으로 다만 인간이 만들어 내는 사건들의 과정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과 인간의 극적인 상호행동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역사 안에서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타적 기독교인들에게는, 역사란 기독교 문화의 발흥과 이교 문명의 사멸을 기술한 이야기 입니다.

문화의 기독교인에게는, 역사란 자연과 정신의 대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종합론자에게는, 역사란 영혼이 하나님과의 궁극적인 교제를 율법 이성 복음 교회의 치하에서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이원론자에게 있어서 역사란, 신앙과 불신앙이 투쟁하는 시간, 생명의 약속이 주어진 때와 그것이 완성될 때의 중간 기간인 것입니다.

그리고 개변론자에게는, 역사란 하나님의 능력있는 행위와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기술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에게는 종말론적 미래가 종말론적 현재로 되어 있습니다. 그가 의미하는 영원이라는 것은, 시간 이전의 하나님의 행동이나 시간 이후의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보다도, 시간 안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영생이란 지금, 여기 있는 실존의 특질quality 입니다. 그러므로 개변주의자들은 창조에서 주어진 것을 보존한다거나 최후의 속량에서 주어질 것을 위한 준비라기보다도 현재의 갱신에 대한 하나님의 가능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만나는 현재가 곧 역사라는 견해를 가지고, 창조와 문화의 세계가 최후로 종말을 고한다는 데 대한 기대보다도, 만물을 끌어올려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더욱 민감합니다.

그의 표현방식은 시간적이 아니라 공간적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운동은 상향적인 운동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과 흠모의 힘찬 파도에 의하여 높이 올려진 인간의 영혼과 행위와 사상의 상승rising 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 안에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 있는 변화된 인간의 삶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자신을 위하여 몸과 영혼을 가진 인간을 만드시고,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세상으로 하여금 그를 통하여 구원받게하신 하나님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개변주의의 주제는 요한복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복음서는 복음을 그리스Greek적 개념으로 번역하여 문화를 새로운 수준으로 상승시켰다는 점에서 문화적 개변 자체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서는 창조에 대한 진술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사랑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창조된 세계는 근본적으로 선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응답 속에서 자기 모순이 발생하였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타락 사상, 선의 전도라는 사상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예수의 응답과 창조주에 대한 인간 세계의 응답을 끊임없이 대조함으로써 잘 드러냅니다. 역사관에 있어서, 역사 안에 있는 시간적 차원, 즉 과거와 미래가 영원과 시간의 관계에 다분히 종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영생'이라는 말로 대치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도다"(요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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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2, 2008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삼위일체론

김 명룡 (장신대 교수)


서 언

기독교 교리 가운데 삼위일체론은 일반적으로 이해가 거의 불가능한 극난한 교리로 알려져 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삼위일체론을 바르게 아는 사람들은 매우 적고, 많은 이들은 삼위일체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서 포기하기도 한다. 삼위일체론은 정말로 이해가 안되는 그런 극난한 교리일까? 삼위일체론이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한국교회 안에는 이단적으로 보이는 잘못된 삼위일체론이 활개를 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삼위일체론은 성서에 근거가 없고, 교회가 발전시킨 사변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셋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셋이 되는 그런 신관이 성서 안에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먼저 밝혀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 (고후 5:19)라고 전한 바울의 메시지가 삼위일체론 이라는 점이다. 삼위일체론이 성서와 관계 없는 고대교회의 사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언가 삼위일체론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위일체론이 이해가 안되는 극난한 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삼위일체론을 무언가 잘못 알고 있다. 삼위일체론은 사변도 아니고 이해가 안되는 극난한 어떤 교리도 아니다. 단지 우리에게 삼위일체론이 무언가 잘못 왜곡되어 전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위일체론이 무엇이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삼위일체의 정통신조인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조 (381년)를 설명하면서 시작하고자 한다.

I.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381년) 신조와 정통 삼위일체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사도신조를 능가하는 권위를 지닌, 2000년 기독교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신조로, 또한 가장 정통적인 신조로 꼽히는 신조이다. 이 신조가 사도신조를 능가하는 권위를 지니는 이유는 사도신조는 동방 정교회가 인정하지 않는 서방교회만의 신조인데 반해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동서교회가 공히 가장 귀중한 정통신조로 인정하는 에큐메니칼 신조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안에는 사도신조만 널리 알려져 있을 뿐, 이 정통신조 가운데 정통신조인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상당한 비극이며 바른 신학적 판단에 어떤 결함을 야기 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연계될 수 있다.

Icon depicting Emperor Constantine and the Fathers
of the First Council of Nicaea (325) as holding 
the Nicene Creed in its 381 form.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무엇이 정통인가 이단인가를 판별하는 결정적 표준이고, 어떤 교회가 바른 신앙 위에 서 있는지를 규정지을 수 있는 결정적 권위를 가진 신조이다. 한국 장로교회 안에 널리 알려져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일부 장로교회의 신조로서 전 세계 교회라는 큰 시각에서 볼 때는 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와는 그 권위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일명 삼위일체 신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삼위일체론 연구에 있어서 결정적 시금석을 제공하는 신조인데, 이 신조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는 것은 바른 삼위일체론 이해에 있어서 결정적인 결함을 야기 시킬 수 있다.

그러면 바른 삼위일체론 이해에 결정적인 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신조일까? 우리는 바른 삼위일체론 연구를 위해 먼저 삼위일체론의 정통신조인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지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영원한 아버지로부터 나신 독생자로서 빛으로 오신 빛이시요, 참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피조 된 것이 아니라 나셨기 때문에 아버지와 본질이 동일하십니다.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 인류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성육신 하셔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시사, 고난을 받으시며 장사지낸바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성경대로 사흘만에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사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분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영광 가운데 재림하시고 그의 나라는 영원무궁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시고, 생명의 부여자이신 성령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아버지로부터 나오시고, 아버지와 아들로 더불어 동일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 성령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위한 하나의 세례만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과 장차 임할 세상에서의 영생을 바라봅니다.
위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와 "우리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 참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참 하나님입니다" 와 "우리는 주님이시고 생명의 부여자이신 성령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동일한 예배와 영광을 받으십니다"라는 중요한 세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다. 즉 이 신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것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 믿고 있다) 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하나님께서 세 분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이 신조의 첫째 단락은 성부이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고, 둘째 단락은 성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으로 고백하기까지는 무수한 신학적 논쟁과 이단과의 투쟁이 있었다.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는 참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께만 적용시키고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 보다 열등한 어떤 존재로 보려고 했던 아리우스(Arius)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이시며 참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참 하나님으로 선포했다. 즉 니케아 공의회는 성부 하나님만이 영원 전부터 존재했던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아리우스파의 일신론을 부정하고 성부 하나님과 똑같은 신성을 지닌 또 한 분의 하나님이신 성자가 계시고 이 성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한 것이다.

381년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325년의 니케아 신조 - 현재 각 종파에서 사용하는 영문판 - 의 성자에 대한 고백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이를 선포하고 있다. 325년의 니케아 신조와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신조 (니케아 신조와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합해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라 칭한다) 사이의 중요한 차이는 성령에 대한 고백이다.

니케아 회의와 제2차 Ecumenical Council (381년)에서 채택된 신조의 원문 비교와 역사적 정황에 대한 wiki. (moderator 註)

위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보면 셋째 단락에서 성령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동일한 예배와 영광을 받으십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고백이 콘스탄티노플 신조의 독특한 고백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동일한 예배와 영광을 받는다"는 표현은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똑 같은 권능과 위엄과 신성을 지닌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표현이다. 즉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외에 성령이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이 성령이신 하나님은 성부나 성자에 열등한 어떤 신이 아니고 신성에 있어서 똑같은 권능과 위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교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정통신조인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일반적인 믿음과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세분이심을 선언하고 있다. 즉 성부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즉 성자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선포하면서 이 세 분 하나님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 신조는 이 세 분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 어느 곳에서도 서도 선포하고 있지 않다. 정통 삼위일체론의 결정적인 신조인 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하나님께서 세 분이심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을 뿐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는 조그마한 암시도 주고 있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고대교회에서 일신론은 언제나 이단이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것이 역동적 일신론이든 양태론적 일신론이든 일신론은 언제나 이단이었고 기독교의 정통신앙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끊임없이 도전해 오고 정통신앙을 위태롭게 했던 일신론 이단을 물리치고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는 세 분 하나님이심을 만천하에 공포한 신조였던 것이다.

Ⅱ. 하나의 본질(우시아)과 세 실체(휘포스타시스)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

325년의 니케아 신조와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신조 사이에 362년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회의에서 고대교회의 삼위일체론의 초석을 놓은 중요한 항목이 결정되는데 기본도식은 "하나의 본질(우시아)과 세 실체(휘포스타시스)"였다. 이 기본 도식에서 "휘포스타시스"라는 희랍어는 개체를 뜻하는 말인데 곧 하나님은 세 분이시라는 말이었다. 362년의 알렉산드리아 회의는 하나님께서 세 분이라는데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그러면 "우시아"라는 말은 무엇일까? 이 "우시아"라는 말은 본질 (nature)을 뜻하는 말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본질이 같은, 즉 동일한 신성을 지닌 하나님이라는 말이었다. 362년의 알렉산드리아 회의는 325년의 니케아 회의에서 결정된 성부와 성자 사이의 "호모우시온"(동일본질) 사상을 이어받으면서 이 "호모우시온"을 성령이신 하나님께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381년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삼위일체론은 알렉산드리아 회의의 결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삼위일체론이다. 즉,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는데(세 하나님), 이 세 하나님은 동일한 신성과 위엄과 권능을 지닌 하나님이라는 것이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규정하는 정통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는데 이 세 하나님은 같은 하나의 본질(우시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본질이 동일하십니다"라고 선언하고 있고, 성령이신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신성과 위엄에 있어서 동일하시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동일한 예배와 영광을 받으십니다"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동방교회의 정통신학자들의 삼위일체론은 몰트만 (J. Moltmann)에 의하면 사회적 삼위일체론이었다. 사회적 삼위일체론이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세 하나님께서 상호간의 사귐을 통해 하나됨을 유지하는 사귐의 삼위일체론을 뜻하는 말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배후에는 바실(Basil), 니사의 그레고리 (Gregory of Nyssa)와 나치안즈의 그레고리 (Gregory of Natianz)와 같은 위대한 신학자들이 있었다. 우리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있도록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배후에 있는 동방교회의 정통신학자들을 캅파도키아 교부들이라 부른다. 이 캅파도키아 교부들 가운데 맏형격인 바실은 세 분 하나님의 일체성을 세 하나님의 코이노니아 (koinonia) 개념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나치안즈의 그레고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족형의 유비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귐은 지상의 인간의 가족 사이의 사귐과는 물론 무한한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장 가까운 지상적 유비는 아담-하와-셋이라는 가족이었다고 가르쳤다.

캅파도키아 교부들은 세 하나님의 일체성을 세 하나님이 괴상한 방식으로 한 분이 되신다는 식으로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즉, 오늘의 한국교회 성도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3=1의 교리가 고대교회에서는 삼위일체론의 초석을 놓은 캅파도키아 교부들의 머리 속에는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또한 이 3=1의 교리는 삼위일체론의 정통신조인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속에도 존재하고 있지 않다.

Ⅲ. 페리코레시스(침투 혹은 순환)로서의 세 하나님의 하나되심

362년의 알렉산드리아 회의의 삼위일체론의 기본도식인 "하나의 본질(우시아)-세 실체(휘포스타시스)"라는 표현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신 세 하나님은 동일한 신성과 권능을 지닌 같은 하나님이심을 선포한 신조였다.

그러면 이 세 하나님의 하나되심은 어떻게 되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대해 결정적인 표현을 한 고대교회의 삼위일체론의 교부는 다메섹의 요한이었다. 요한은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시고, 이 세 하나님은 본질이 같으신 하나님 이신데, 이 세하나님은 상호 침투(페리코레시스)와 함께 하심으로 하나됨을 유지하고 계신다고 가르쳤다.

이 상호 침투(페리코레시스)와 함께 하심의 의미는 예수께서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요 14:7-11 참고)고 언급한 말씀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성부와 성자의 하나됨은 성부가 성자이시고 성자가 성부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성자는 성부 안에 계시고, 성부는 성자와 함께 계시고 성자 안에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한에 의하면 성부는 성자와 함께 계시고 성자 안에 계신다. 이런 까닭에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고 아들이 행하시는 일은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과 동일하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 14:11).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체성의 신비는 다메섹의 요한에 의하면 성부가 성자 안에 거하시고, 성자가 성부 안에 거하시고, 또한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의 페리코레시스적 양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부가 성자 안에 거하시는 양태는 성자와 성부가 성령 안에 거하시는 양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페리코레시스 (perichoresis)라는 말의 원래의 뜻은 "윤무輪舞"라는 말에서 유래 된 말이다. 그것은 무대에서 무희들이 손을 맞잡고 원형의 춤을 추는 것에서 기인된 말이다. 예컨데 남자 무용수와 여자 무용수가 손을 맞잡고 원형의 춤을 출 때 두 무용수는 사람은 분명 둘이지만 하나의 춤과 하나의 연기와 표상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부와 성자께서 만드시는 사역이 그러하다는 의미이다. 희랍의 신들은 페리코레시스적 존재가 아니었다. 희랍의 여러 신들은 상호 간의 갈등과 투쟁과 싸움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성서의 하나님은 세 하나님이시지만 그들은 사랑의 깊은 사귐으로 성부는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는 성령 안에 계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안에 계신다. 즉 성서의 하나님은 페리코레시스적 양태를 지닌 존재로, 독자의 길을 걷는 세 신들이 아니고 하나이신 하나님이다.

Ⅳ. 터툴리안(Tertullian)의 삼위일체 도식의 신학적 오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삼위일체의 정통적 신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는 세 하나님의 모습을 분명히 하고 있는 반면,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는 표현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즉, 하나님은 세 분이신데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이 원래의 정통적 삼위일체론의 도식이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우리들은 삼위일체론을 생각 할 때 언제나 세 하나님께서 한 분이 되시는, 즉 3=1의 교리를 삼위일체론이라고 믿고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터툴리안의 삼위일체 도식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터툴리안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언급 할 때 "한 본체(숩스탄티아)와 세 인격(페르조나)"으로 표현했다. 이 표현에서 한 본체란 말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는 말이다. 그리고 세 인격이라고 표현되고 있는 라틴어의 "페르조나(persona)"는 사실은 인격으로 번역하면 안되는 말인데, 왜냐하면 '페르조나'는 터툴리안이 살던 시대에는 개체성을 지닌 한 인격체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었고, 무대에서 배우가 어떤 역할을 할 때 그 역할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즉 어떤 배우가 왕으로 분장해서 왕의 역할을 할 때 그때 이 '페르조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이 '페르조나'는 가면이라는 말로도 번역이 가능한 단어였다. 따라서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의 도식을 다시 번역하면 "한 본체 (숩스탄티아)와 세 역할(페르조나)" 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신데 세가지 얼굴을 갖고 세가지 역할을 한다고 한다면 이는 이미 고대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양태론 이단에 매우 근접하고 있는 표현이다. 사실상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의 매우 어두운 그림자를 느낄 수 있는, 문제가 많은 삼위일체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은 유감스럽게도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의 초석이 되었는데, 이는 어거스틴(Augustinus)이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면서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의 기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도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세 하나님께는 독자적인 개체성을 부여하기 보다는 한 분 하나님의 내적 분리를 통해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만 아버지이고 아들이고 성령이시다고 가르쳤다.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칼 바르트(K.Barth)와 칼 라너(K. Rahner)라는 신구교의 신학의 대가들이 그대로 이어 받았다. 바르트는 터툴리안의 삼위일체 도식에서의 '페르조나'는 계몽시대 이후의 개체성이 들어 있는 의미의 인격이 아니었고, 단지 역할이라는 의미로 터툴리안 시대에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바르트는 삼위일체 도식을 "한 인격체(Person)와 세 존재양태(Seinsweise)”로 표현했다. 바르트가 표현한 세 존재양태는 터툴리안의 세 '페르조나'를 오늘의 독일어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바르트에 이어서 라너는 더욱 터툴리안의 표현에 가깝게 삼위일체 도식을 “한 인격체(Person)와 세 본체의 양태(Subsistenzweise)”로 표현했다. 이것은 터툴리안이 한 하나님을 하나의 본체로 표현한 것에 유래되고 있는데, 세 분 하나님을 한 하나님의 본체가 드러나는 세가지 양태로 표현한 것이다. 바르트와 라너의 삼위일체 도식은 터툴리안의 삼위일체 도식의 20세기적 발전인데, 모두 양태론의 그림자를 벗기 어려운, 문제가 많은 삼위일체론 이었다.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은 고대교회의 터툴리안에서 20세기의 칼 바르트와 칼 라너에 이르기까지 양태론적 성향의 삼위일체론의 하나의 흐름이 존재하는 반면 또 하나의 삼위일체론의 중요한 흐름이 있는데 그것은 3=1의 교리를 삼위일체론으로 보는 흐름이다. 이 흐름은 터툴리안에서 어거스틴으로 이어 내려오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사고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와 동방교회의 캅파도키아 교부들에 의해 주장된 하나님은 세 분 이시다는 사고를 종합한 것인데, 종교개혁자 칼빈(J. Calvin)에게서 뚜렷이 나타나고 오늘에 있어서는 스코틀랜드의 개혁파 신학자 토랜스(T. F. Torrans)와 독일 프라이브르그(Freiburg)의 카톨릭 신학자 그레스하케(G. Greshake)에게서 명백히 살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3=1의 교리는 언뜻 보기에는 동서교회의 삼위일체론을 종합한 가장 훌륭한 삼위일체론으로 보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종합될 수 없는 두 개의 사고를 합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삼위일체론을 이해 할 수 없는 교리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가 셋이 되고 셋이 하나가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 할 뿐만 아니라 진리도 아니다.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의 근본적 문제는 그것이 양태론적 성향의 삼위일체론이든, 3=1의 교리를 주장하는 삼위일체론이든 동서교회가 공히 고백하는 가장 귀중한 정통신조인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위배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니케아-콘스타티노플 신조는 모든 형태의 일신론과 대립되어 있는 삼위일체적 신조인데,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은 두 개의 흐름 모두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고백하는 일신론의 터전 위에 있기 때문이다.

Ⅴ. 삼신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

한국교회 내에서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하면 정통이고 하나님은 세 분이라고 말하면 이단이라고 보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고는 바른 사고도 아니고 정통신조에 입각한 사고도 아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서방교회의 전통 안에는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바른 고백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서방교회 신학의 삼위일체론의 전제가 전 세계교회의 정통신조인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충돌되고 있다는 점을 깊이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또 하나 유의해야 하는 것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만들었던 캅파도키아의 교부들이 그들의 대적이었던 일신론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삼신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이다. 몰트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삼위일체 신학의 토의들에서 삼신론의 비난은 사실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세신들'에 관한 이론을 대변한 기독교 신학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비난은 먼저 고대의 아리우스파가 행했던 비난이었고, 그 다음에는 정통 기독교에 대한 이슬람의 비난이었다. 그 후에 이 비난은 동방교회 신학에 대한 서방교회의 비난이 되었고, 오늘날 그것은 자신의 현대적 양태론을 숨기는 데에 봉사하고 있다. 이슬람 유일신론의 전망에서 볼 때, 모든 기독교 신학자들은 - 어거스틴 혹은 토마스, 바르트 혹은 칼 라너, 판넨베르그 혹은 그레스하케 등 - '삼신론자' 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고수하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 부르기 때문이다.

몰트만이 말한 것처럼 이슬람의 유일신관에서 보면 모든 기독교 신학자들과 기독교회들은 삼신론자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학자들과 기독교회들은 성부 하나님 외에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신 하나님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태론적 이단의 눈으로 볼 때는 정통 삼위일체론은 언제나 삼신론이다. 그리고 삼신론은 언제나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파를 비롯한 일신론 이단들이나 양태론적 이단들이 삼위일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했던 가공의 이론이었다는 몰트만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삼위일체론의 정통신조에서 이탈한 서방교회가 삼위일체론의 정통신조를 유지하고 있었던 동방교회를 비판한 이론이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바른 삼위일체론은 한 쪽에는 일신론과 다른 한 쪽에는 삼신론을 두고 그 가운데를 선택하는 3=1의 교리가 아니고, 성부, 성자, 성령이신 세 분 하나님께서 페리코레시스적 삶인 상호 내주와 함께 하심을 통해 하나됨을 유지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독특한 삶과 존재방식을 설명하는 교리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나님은 상호내주와 함께 거하심으로 하나이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라고 말씀하셨다.

결 언

"성령이신 하나님은 다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와 같은 표현을 우리는 한국교회 내에서 자주 듣게 된다. 그런데 이 표현은 일신론 이단으로 흐르는 표현이고, 양태론의 검은 그림자를 느낄 수 있는 표현이다. 바른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안에 거하시고 성령 안에서 우리를 만나신다는 표현이다.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통해,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고 "그리스도의 영"(롬 8:9) 이시다.

삼위일체론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혼동하기 위한 교리가 아니다. 성부가 성자가 되고 성령이 성부가 되는 괴상한 교리가 삼위일체론이 아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인격적 개체성을 위협하는 삼위일체론은 모두 잘못된 삼위일체론이고 이단적인 삼위일체론이다. 사과는 하나지만 껍질과 속과 씨가 있듯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신다는 표현 역시 잘못된 삼위일체론의 비유이다. 위와 같은 비유는 일신론의 위장일 뿐이다. 위와 같은 비유가 삼위일체의 비유로 한국교회 안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철저한 일신론적 사고가 한국교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부 하나님을 믿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이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이미 이슬람과 같은 일신론의 이교적 사상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삼위일체론은 일신론과의 투쟁과 대립을 통해 형성된 교리였다. 그것은 일신론과 삼신론의 중간에 있는 교리가 아니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똑같은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려는 교리였다. 그것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오순절 이후 성령의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세 분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바탕이 된 교리였다. 그런 까닭에 삼위일체론은 성부 하나님의 경험밖에 없는 유대교의 일신론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기독교의 독특한 신관이었고, 이런 까닭에 초대교회는 성부와 성자가 성령의 이름으로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 터툴리안과 톨스토이

라은성 교수, 국제신학대

The Tertullian Project <-- 터툴리안의 모든것!

I. 생애

터툴리안(약155–230)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퀸투스 셉티미우스 플로렌스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입니다. 참 긴 이름이지요. 당시 그의 부친은 로마 장교로서 카르타고에서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교도 가정에서 태어난 터툴리안은 덕스러운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터툴리안은 아마도 모든 일에 있어 부지런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문성도 뛰어났습니다. 특별히 로마법에 관해 심오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직업상 법률가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차분하고 냉정한 이성을 지닌 인물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약 197~198년경 그는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글쎄요. 어떻게 개종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니 분명한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는 것이겠죠. 역사는 기록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삼위일체’(trinitas)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교부입니다. 터툴리안은 삼위일체를 ‘한 본질과 세 위격들’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신ㆍ구약’ 성경이라는 용어도 처음으로 그가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삼위일체를, 즉 하나님에 관해 알려고 할 때에 반드시 터툴리안의 설명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죠.

약 200년경 결혼한 그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로마제국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146-211)의 핍박이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터툴리안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이유는 몬타니즘(Montanism)을 로마교회가 정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몬타누스파는 재혼을 금했는데 로마감독의 권위를 가지고 재혼을 허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217~222년 경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 <겸양에 관하여>를 쓴 후 역사의 기록에서 벗어났습니다.

터툴리안이 몬타니즘으로 개종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몬타니즘은 초대교회 때, 즉 2세기 중엽에 일어난 기독교의 한 종파였습니다. 창설한 자는 ‘몬타누스’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성령 운동을 강조한 종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몬타누스는 두 여인, 즉 프리스킬라와 막시밀라와 함께 동행했는데 그녀들은 성령의 인도를 직접적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위대한 여인들의 발자취>라는 책의 3장 ‘프리스킬라: 이단자’를 보면, 몬타니즘에 관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아직 활동하고 있는 동안 일부 개종자들이 이상한 교리들을 수용하고 채택했다. 예수님은 몇몇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와서 미혹시킬 것이라고 예언하신 적이 있다(마 13:20-22). 몬타니스트들이 강조하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그 결과 사도들은 성도들을 미혹시키기 시작하는 이단적 가르침들에 대해 교회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는데 주력했다(행 20:29-30; 벧후 2:1-3). 하지만 이단 사설은 교회 전체에 퍼져 나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수용하였다(요일 2:19). 2세기 말 소아시아 지방에 프리기안이라는 곳에 이단자 몬타누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성령께서 교회에 새로운 계시를 주시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과 두 명의 여인 프리스킬라(Pris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는 그 계시를 받는 선지자들이라고 칭했다. 그들은 받은 계시를 ‘새 예언’(New Prophecy)라고 불렀다. 새 예언은 박해와 금식에 저항하고, 재혼을 금하고, 죄를 미워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단과 정통>의 129~133페이지를 읽어보시면 그 궁금증이 시원하게 풀릴 것이라 믿어집니다.

II. 저서

아무튼 터툴리안은 탁월한 변증가, 논리적인 변증가, 철의 의지를 지닌 변증가였습니다. 진실하고 선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칠 단호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차분한 성품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을 왜곡하거나 사실을 과장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기독교의 도덕성을 과장하는 경우도 혹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학문성을 평가 절하해서는 안됩니다. 그의 탁월한 논리적 사고는 기독교를 변증하는 데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는 무려 31권의 작품들을 집필했습니다. 대부분이 변증적 작품, 논쟁적 작품, 교의적 작품, 도덕적 작품들 입니다. 그러면 하나씩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변증적 작품들 중에서 <이교도들에 관하여>는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은 이교의 도덕들을 비판하고, 2권은 바로(Varro)라는 사람이 제시한 이교 신앙들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책 <변증학>은 197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이전의 선배들처럼 이교를 비판하고 기독교인들의 순수성을 변호합니다. 특별히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이 부당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세 번째 책인 <영혼의 증거에 관하여>는 197~200년에 쓰인 작품으로, 6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책은 마치 <변증학>의 부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200~206년에 쓰여진 <유대인들에 반대하여>는 기독교의 진실성을 예언서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모두 1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두 번째 범주는 논쟁적 작품들입니다. 이단들에 관한 책으로, 이레니우스처럼 교회의 전통과 권위를 가지고 이단자들에 반대했습니다. 1~14장은 신실한 성도들에게 이단과 이단자들을 경계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5~37장은 이단자들도 성경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정당함을 말하지만, 성경은 진실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의 것이지 거짓 신앙을 소유한 자들의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38~44장은 이단자들이 지닌 기강들은 도둑과 강도들이 지닌 것과 같다고 혹평했습니다. 두 번째 책인 <마르키온에 반대하여>는 이단자 마르키온에 대해 비판한 책입니다.

세 번째 범주에 해당되는 교의적 작품들은 주로 <세례에 관하여>, <스콜피온 해독제>, <그리스도의 몸과 부활에 관하여>, <프락세아스에 반대하여>, <영혼에 관하여>등입니다. 그 가운데 <프락세아스에 반대하여>는 성부 고난설을 주장하는 지도자인 프락세아스에 반대해 쓴 작품입니다. 이 당시 프락세아스는 아프리카 지방에 거짓 교리를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터툴리안은 그에게 삼위일체 위격들의 구별과, 존재의 단일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와 성육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합니다.

네 번째 범주에 속하는 도덕적 작품들 가운데 <기도에 관하여>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1~9장은 주기도문을 세밀하게 설명하는 작품입니다. 10~27장은 선한 기도의 도덕적 조건, 육체적 조건, 그리고 예식적 조건들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28~29장은 기도의 유효성을 설명합니다. 다음은 <회개에 관하여>, <자선에 관하여>, <여성들을 존경함에 관하여>입니다. 이 책에서는 여성들의 옷차림, 장식을 간단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젊은 여성들에 관하여>, <결혼에 관하여>, <과부에 관하여>, <순교자들에 관하여>, 그리고 <인내에 관하여>등이 있습니다.

마지막 범주는 기강에 관한 작품들입니다. <구경거리에 관하여>, <양심에 관하여>, <핍박에 관하여>, <우상숭배에 관하여>, <외투에 관하여>가 있습니다.

이상의 저서들 중 몇 가지만 간추려 읽어보도록 합시다. 먼저 <변증학>에 관한 작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레니우스가 영지주의에 반대하여 큰 공헌을 했던 것처럼 터툴리안도 역시 이단들에 반대하여 큰 공헌을 했습니다.

다음은 <변증학>의 21장 6절, 19장 3절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시는 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두 분은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또 성령으로부터 나오시는 성령도 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시는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에 수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근원에서부터 나오시는 분이시며 결코 분리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기독교 기강과 신앙에 대한 진리가 현존하는 곳에서, 성경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성경의 설명도 발견할 수 있고 모든 기독교 전통 진리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기도에 관하여>의 6장 2절의 내용인데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영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생명이며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떡이 되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도 영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떡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덧붙여 말하면, 그분의 몸은 떡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몸이니라’는 말씀을 이와 같이 이해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일용할 양식을 간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기 위함을 기도하며 그분의 몸과 분리되지 않도록 간구해야만 합니다.”

끝으로 <프락세아스에 반대하여>의 2장 1절. “오직 한 분 하나님만 계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처럼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아들이 있으십니다. 말씀이신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고, 그분으로부터 모든 것이 만들어졌고 그분이 없이는 어떤 것도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분이 성부로 말미암아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고, 사람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가 믿습니다. 그분이 성경에 따라 고통을 당하셨고, 죽으셨고, 그리고 장사되셨음을 우리가 믿습니다. 그분이 성부의 우편에 앉아계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분이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약속에 따라 성부께서 성령을 즉 모든 자들의 신앙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을 보내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신앙의 이와 같은 규율은 복음의 시작한 후에 있었습니다. 초기 이단자들이 일어나기 전에도 말입니다.”

터툴리안의 신학은 대체적으로 정통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오리겐과는 달리 그리스 철학을 증오한 자였습니다. 영혼이 선재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 개념은 후에 있을 니케아 범교회 종교회의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별히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성부 고난설’에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삼위일체 개념을 설명하면서 ‘삼위일체, 경륜(economy), 위격, 그리고 본질’ 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성자는 성부와 구별되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끝으로 그는 ‘믿음의 규율’을 언급했는데 이는 교회의 권위 있는 전통을 의미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말하는 전통이 아니라 바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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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 명혁 목사의 글로서, 니이버의 <그리스도와 문화> 그리고 터툴리안과 그의 시대상황이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 (성육) 요1:14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의 사건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간 문화의 옷을 입은 복음의 ‘토착화’ 사건은 기독교 역사의 특성중의 하나인데, 양자(신인 및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바로 설정하는 것은 해결하기 힘든 ‘영속적인’(enduring) 문제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300여년 동안 세계에 전파되었을 때 복음은 전파된 지역의 문화의 옷을 입고 각각 다른 형태의 기독교를 형성했다. 즉,

1) 시리아의 안디옥을 중심으로 한 ‘안디옥 학파’의 기독교, 2) 북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교, 3) 로마를 중심으로 한 ‘로마 학파’의 기독교, 4) 북 아프리카의 칼타고를 중심으로 한 ‘라틴/아프리카 학파’의 기독교, 5) 희랍의 콘스탄티노풀을 중심으로 한 ‘비잔틴 학파’의 기독교를 형성했다.

이는 한국과 일본과 태국에 전래된 기독교의 형태와 특성이 각각 다른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으므로 그것을 정죄하는 대신 그대로 받아드리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고전9:22

리차드 니버는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기독교 문화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째로 나타난 기독교 문화는 문화를 적대시하는 기독교 문화로, 초대교회의 터툴리안, 중세의 수도원주의, 종교개혁 시대의 메노나이트, 근세의 톨스토이 등에 의해 표현된 ‘반문화적’ 기독교 문화였다.

둘째로 나타난 기독교 문화는 기독교의 이념과 문화의 이념을 조화시키려는 기독교 문화로, 초대교회의 노스틱주의, 중세의 아벨라르, 근세의 릿츨에 의해 표현된 ‘적응적’ 기독교 문화였다.

셋째로 나타난 기독교 문화는 문화를 완성시키려는 기독교 문화로, 초대교회의 저스틴과 클레멘트,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 근세의 조셉 버틀러 등에 의해 표현된 ‘종합적’ 기독교 문화였다.

넷째로 나타난 기독교 문화는 기독교의 이념과 문화의 이념을 역설적으로 보는 이원론적 기독교 문화로, 초대교회의 말시온, 중세의 옥캄, 종교개혁시대의 루터, 근세의 키엘케골 등에 의해 표현된 ‘역설적’ 기독교 문화였다.

다섯째로 나타난 기독교 문화는 문화를 개종 시키려는 기독교 문화로, 초대교회의 어거스틴, 종교개혁시대의 칼빈, 근세의 요나단 에드워즈와 마우리스 등에 의해 표현된 역동적 ‘변혁주의적’ 기독교 문화였다.

초대교회에 형성된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의 특성들을 간단히 살펴본다.

히브리 전통에 선 ‘안디옥 학파’의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역사성과 인성을 강조하고 성경의 역사적 및 문자적 해석을 주장했다.

헬라 전통에 선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초월성과 신성을 강조하고 성경의 비유적 및 영적 해석을 주장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교가 철학적이고 문화적이고 종합적이었는데 비해, ‘안디옥 학파’나 ‘라틴/아프리카 학파’의 기독교는 반 철학적이고 반 문화적이고 반 종합적이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클레멘트가 철학이 복음에 이르는 준비이며 문화적 요구와 그리스도의 요구를 조화시키려고 한데 비해, ‘라틴/아프리카 학파’의 터툴리안은 철학이 복음과 역행하며 문화적 요구와 그리스도의 요구가 서로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로마 학파’의 기독교는 법과 제도와 전통을 강조했고, 콘스탄티노풀을 중심으로 한 ‘비잔틴 학파’의 기독교는 의식과 신비를 강조했다.

이는 한국의 기독교가 감성적인데 비해 일본의 기독교가 지성적이며, 화란의 기독교가 정적인데 비해 흑인들의 기독교가 동적인 것과 비슷하다.

서로 대립되는 ‘라틴/아프리카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문화에 대한 상반되는 특성을 살펴본다.

‘라틴/아프리카 학파’의 터툴리안은 원죄가 사회 속에까지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세속 질서에서 멀리 떠나야 하며 세속적 집회와 세속적 직업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써커스, 극장, 경기장 등에서 공연되는 게임이나 쇼에 참석하는 것을 단호히 배격했다. 터툴리안은 여인들의 장식과 화장 등도 마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배격했으니, "피부를 약물로 문지르고, 뺨을 연지로 칠하고, 눈을 검댕이로 두드러지게 만드는 여인들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우리 나라 초기의 고신 교단의 입장과 비슷했다.

그러나 터툴리안이 "레슬링 같은 운동을 마귀의 노름"이라고 일축해 버린 데 비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클레멘트는 레슬링이 여자들에게는 적당치 않으나 남자들에게는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위해 좋은 운동이라고 말했고, 여인들이 화려한 옷, 자주색 옷, 짧은 치마, 보석 장식, 화장품 등등을 사용하는 것은 욕정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되어 금했으나, "금 장식물이나 부드러운 옷을 입는 것을 전적으로 금하지는 않는다"고 했으며 "지나친 마음의 충동을 일으켜 방종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억제한다면, 적절하게 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했다. 화장품도 적당하게, 즉 남자가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사용하면 무방하다고도 했다. 우리 나라의 기장 교단의 입장과도 비슷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롬12:2

어거스틴은 초대교회의 다양한 문화 전통들을 비판하고 종합하여 하나의 역동적이고 균형 잡힌 세계관과 문화관을 이룩했다. 어거스틴의 세속관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악한 세력의 소산이라고 정죄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로 보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선물로 극구 예찬하기도 했다. 어거스틴이 현세의 역사발전 과정과 세속질서를 "목적에 이르기 위한 잠정적인 수단과 과정"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역사과정과 세속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인간구원의 섭리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고 확신했으므로 결국 역사와 세속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즉 어거스틴은 세속질서와 문화질서에 대하여 부정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입장 및 변혁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종말에 완성될 구원 사역이 세속 및 문화 질서 안에서 지금 부분적으로 실현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인간과 사회와 문화의 ‘변혁’을 이루어가는 신자들의 삶은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하나님의 구속 섭리에 대한 전적인 신뢰 때문에 현세에 대한 비관적 어거스틴은 내세에 대한 낙관적 어거스틴으로 바뀌어졌다. 우리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그 변혁을 시도하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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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신학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보라색’이 있고, 열정적이고 배타적인 ‘붉은색’이 있고,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파란색’이 있다. 북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에서 형성된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보라’ 색깔의 신학을 주창했고, 로마에 뿌리를 두고 북아프리카 칼타고에서 형성된 라틴 학파는 열정적이고 배타적인 ‘붉은’ 색깔의 신학을 주창했으며, 예루살렘에 뿌리를 두고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형성된 안디옥 학파는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파란’ 색깔의 신학을 주창했다.

오늘은 북아프리카 칼타고에서 형성된 열정적이고 배타적인 ‘붉은’ 색깔의 신학의 내용과 특성을 살펴본다.

“철학은 이단의 어머니”‘신앙과 이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양한 입장들이 이천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 나타났는데, 라틴 학파는 양자와의 관계를 ‘불연속적’이고 ‘상호 배타적’인 관계로 보았다.

라틴 학파의 터툴리안(150-220)은 그의 저술 <이단논박>에서 이성과 철학 일반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입장을 취했다.<이단논박>7절에서 “철학은 이단에게 장비를 제공하고 있다. 예루살렘과 아덴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What has Jerusalem to do with Athens?) 고 외치며 철학을 비판했다. 터툴리안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믿음을 가진 후에는 탐구가 필요 없다고 단정했다. 같은 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사변이 필요 없으며 복음 이후에는 탐구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의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신앙을 이교 세계를 향해서 분명하고 강하게 변증하기 위해서였다.

터툴리안은 신앙의 절대성과 배타성을 <이단논박>13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신앙의 규칙(Rule of Faith) 즉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하나의 신앙에 대해서는 어떠한 질문도 용납되지 않는다. 물론 신앙의 규칙이 방해 받지 않는 범위 안에서 토론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결론을 말하면, 잘못된 것을 알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무식하게 있는 것이’(remain ignorant) 낫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했지(눅18:42) 네 성경 지식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단논박>16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성경에 관한 토론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복통과 두통을 가져올 뿐이다.” “Arguments about Scriptures achieve nothing but a stomach-ache or a headache.” 결국 터툴리안은 “모순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I believe because it is absurd.) 라고 외치면서 신앙의 절대성과 역설성과 모순성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하셨다. 이와 같은 일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다. 이것은 극히 어리석은 말이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는 장사 되었다가 다시 사시었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확실하다.” (“그리스도의 육신에 대하여” 5).

“세상이 기뻐할 때 우리는 차라리 슬퍼하자”

‘복음과 문화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양한 입장들이 이천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 나타났는데, 라틴 학파는 양자간의 관계를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로 보았다. 터툴리안은 세상과 문화 일반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다. 터툴리안은 리차드 니버가 분류한 대로 ‘반 문화적 입장’(Christ against Culture)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다.

“터툴리안은 원죄가 사회 속에까지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니버, “그리스도와 문화” p.5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속 질서에서 멀리 떠나야 하며 세속적 직업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써커스, 극장, 경기장, 등에서 공연되는 게임이나 쇼에 참석하는 것을 단호히 배격했다. “그와 같은 것들은 마귀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마귀 때문에 만들어진, 악한 자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에 관하여” 24).

“조각, 회화, 문학, 수학, 체육, 첨성술, 연예, 교육, 정치, 병무 등의 세속적 직업을 일괄적으로 정죄했다. (“우상숭배에 관하여” 5,8-11, 18-19).

터툴리안은 재물을 악한 것으로 보며 돈을 사랑하는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여인들의 장식과 화장 등도 마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배격했으니, “피부를 약물로 문지르고, 뺨을 연지로 칠하고, 눈을 검댕으로 두드러지게 만드는 여인들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여인의 옷에 관하여” 5).

터툴리안의 입장이 좀 극단적인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가 사고와 삶에 있어서 항상 세속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터툴리안은 세속화와 우상숭배를 경계하면서 이렇게 글을 썼다.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으로부터 교회로 온다. 원수의 작업장으로부터 하나님의 집으로 온다. 우상을 만들던 손을 하나님께 높이 든다. 마귀에게 내주었던 손으로 주님의 몸을 만진다. 우상 제조업자들이 성직자의 자리까지 차지한다. 이것은 탄식스러운 일이요 뿌끄러운 일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손을 한번 그리스도에게 얹었지만 이들은 날마다 그의 몸을 괴롭힌다. 여러 종류의 수공업은 모두 우상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책망을 받을 만한 일이다.” (“우상숭배에 관하여” 7,8).

그리스도인들이 이교적 축제에 참여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했다. “그와 같을 경우에 하나님의 종이 옷이나 음식이나 다른 방법으로 이교적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가? 사도가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말한 것은 형제들에 관해서 말한 것이다. 즉 믿는 형제들과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는 빛과 어두움이 사귐이 있을 수 없고 생명과 죽음의 사귐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성경은 ‘세상이 기뻐할 때 너희는 슬퍼하라’고 했다. 우리가 세상과 함께 기뻐하면 세상과 함께 슬퍼하게 될까 봐 염려된다. 우리는 세상이 기뻐할 때 차라리 슬퍼하자. 그래야 세상이 슬퍼할 때 기뻐하게 될 것이다.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서 즐거워할 때 부자는 고통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세상이 하는 대로 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방인들과 함께 살도록 허용되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죽도록 허용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세상에서 살지만 그들의 잘못을 함께 나눌 수는 없다.”

터툴리안의 입장이 좀 극단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밴틸 교수는 터툴리안을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지명하면서 우리는 그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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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September 30, 2008

한국 전통음악의 교회 수용 문제

홍 정수, 교회와 신학 21집, 1989. 5. 12. 369-3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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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서양음악이 함께 들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초창기에도 한국 전통음악을 교회의 음악으로 세워 보려고 노력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은 별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길선주 목사, 게일 선교사 등 한국교회에서 이러한 흐름은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무시해도 될만큼 사소하지 않았다. 이 글의 앞 부분은 이러한 초창기의 지도자들의 생각과 70년대 이후 일어난 교회음악의 토착화 노력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당시와 오늘의 변화된 음악환경에 비추어 생각해본다. 초창기의 사료들이 아직 충분히 검토된 단계는 아니기 때문에 논의에 많은 제약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전통음악을 교회에 수용하는 데에는 날카로운 정신적 대립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는 <신앙 지향적인 방향>과 <민족 지향적인 방향>이다. 이 두 방향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러나 이 두 방향이 의미가 있으려면 적절하게 서로 보완되는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민족의 음악이 교회적 음악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가능성에 관해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한국 전통음악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 있을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점검하였다. 산만한 나열같은 이 부분은 이미 있어왔던 전통음악적 교회음악과 그 주장하는 바를 고려하여 어떻게 하면 더 용이하게 교회가 한국 전통음악을 수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첨예하게 찬반이 대립하기 쉬운 이 문제는 좋게 풀리는 경우에 대단히 창조적인 열매들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아직은 찬반 사이의 긴장감이 팽팽하다. 이러한 긴장의 전제조건이 되는 "걱정"들과 "소망"들을 교회적인 방법을 통해 풀어 보려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

"한량업시 깃븜으로 찬송하난 것이 팔년동안 하나님을 찻다가 오늘날 예수의 피로 내 죄를 씨심을 받엇다 하며 업대여 시로 찬숑하기를 죠선노래 모양으로 부르고....."

위의 글은 1913년 6월2일의 그리스도 회보에 기록된 것으로 천화신을 섬겼던 무녀가 하나님을 영접하고 찬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무곡들이 각 지방의 민요와 흡사하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보아 민요적인 것과 비슷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찬양을 들으면 아무리 이런 종류의 노래를 교회에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경건치 못한 노래라고 비난하기보다는 그의 구원을 기뻐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음악의 토착화라고 말하기에는 한국 교회의 전체적인 사건이거나 지속적이지 못하고 개인적이고 임시적이었다. 당시에 이러한 일들이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남으로써 간헐적으로 발생했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토속적 음악들은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수용되지 못했다. 아니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교회는 무속을 타파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당시 각 마을마다 있었던 성황당이나 사당들이 없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무속을 생각나게 하는 노래들조차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당시에 무당들은 교화의 대상이 되어 무당들이 -위에 소개한 신문 기사에서 보는 것처럼- 더러 기독교인이 된 사례가 더러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음악의 중심그룹이었던 세 집단, 즉 무당, 광대, 기생에 대해 기독교는 반대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다른 종류의 변변한 음악가 그룹이 없었다는 점이 한국 교회와 전통음악의 관계를 좋지 않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교회음악의 토착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무녀의 찬양도 관계되는 것을 교회화시키는 일을 토착화의 목표로 생각한다. 즉 한국의 전통적, 토속적 음악이나 이와 관련 있는 기독교 음악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의 음악문화적인 틀이 자국의 것이 되어야 하는데, ①이것이 복음수용에 더 효과적일 수 있고(왜냐하면 우리에게 체질화 되었다고 보기 때문, ②우리의 민족적 자존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수용의 효과적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의 한국 교회음악의 토착화 운동은 100여년이 늦었다. 그 때에 토착화를 실행했어야 그 말뜻에 걸맞다. 왜냐하면 당시의 토착적이었던 것은 이미 그 뿌리가 상당히 뽑혀있고 다른 뿌리가 더 깊숙히 박혀 있기 때문이다. "토착화"란 말은 그 지역의 문화와 사람에게 맞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의 음악적 특성이 100여년 전과는 달라지고 말았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든다면 서양적 음악을 만들 수밖에 없다. 토착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전통음악적인 것은 오늘날 교인들에게(특히 청소년층) 다시 체질화 시켜야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한편 새롭게 체질화시킬 수 있는 청소년층이 전통음악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옛 세대에 비해 덜 갖고 있다. 이들이 살아있는 광대, 기생, 무당의 음악으로 이것을 체험한 세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구세대와 신세대가 전통을 보는 입장이 달라졌고 전통음악의 의미가 달라진 것을 본다.1)

아직까지도 우리의 노래 관습에는 전통음악적인 근본이 남아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의 주장자들은 한국의 교회에서 틀리게 불리는 것을 관찰하여 그 증거로 삼는다. 즉 틀리게 불리는 찬송가들이 주로 오음음계나 한국적 리듬음계로 변형된다고 하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음악적 체질이 국악적 틀을 그대로 갖고있는 증거라는 것이다.2)

그런데 ‘잘못 부르는’데에 나타난‘한국적 특성’이 그대로 교회음악의 한국적 방향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오창하는 사람들이 ‘한국적’교회음악을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하는 입장에 서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율배반은 오창하는 옛 세대들이 갖는 음악에 관한 특이한 입장을 반영해 준다. 그래서 옛 세대들에게는 전통음악이 기피해야 할 음악으로, 신세대 들에게는 ‘민족의 음악’으로 이해된다.

나이가 많은 세대층에서도 전통음악의 의미변화를 시도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떠돌아다니는 가사에 민요를 붙였거나, 민요식의 성가를 개인적으로 쓰려고 만든 사람들도 이미 있었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그 세대에서 일반화되지 못했다. 전통음악을 생활 속에서 체험하지 않은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초기의 한국교회에서 비기독교적 종교체계와 사회적 하부계층을 연상케 했던 음악을 우리의 전통음악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토착화론은 우리 민족에게 체질화되어 있다는‘보편성’의 관점에서보다는 민족적 자존의 문제에서 볼 때에 더 큰 타당성을 지닌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경우, 전통음악적 교회음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에게 ‘의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의무는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기호 문제를 넘어 서 있고, 적합하느냐 부적합하느냐의 문제도 우선 제껴둘 수 있게 한다. 이 의무의 강조 뒤에는‘민족적 자아’가 상실되면 좋지 않다는 생각, 또는 더 나아가서 수치라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3

초창기 한국교회에서는 토착화라는 명칭이 없이 이 문제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 즉 당시의 민요나 민요적인 노래들을 취하여 한국인에게 맞는 교회음악을 성립시키려던 노력이 그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한 사람 중에는 길선주 목사같은 한국인도 있었고 게일(J. S. Gale)과 같은 선교사도 있었다.

길선주 목사는 전통음악을 교회에 끌어들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들인 길진경 목사가 쓴 글에 의하면 1909년에 길선주 목사가 이름 있는 악사들을 그가 시무하던 평양의 장대현교회에 초빙하여 "교회 의식에 맞는 가락과 그 가락에 맞는 성경귀절을 선택 연구하는 데에 힘을 쓰는 한편, 교회명절과 특별행사 때마다 연주해서 교회의 아악에 대한 향심을 부추겼다"고 한다. 길목사는 이러한 음악이 수입된 찬송가들을 대체하기를 바랐고 이를 위해 상당한 돈을 투자하였으나 편곡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는 것이다.3)
길선주 목사는 「수심가」에 맞추어 전도자로서의 심정을 노래로 남기기도 했다.4) 길선주 목사 작사의 노래는 후에 주기철 목사의 " 영문밖의 길"과 손양원 목사의 "낮에나 밤에나"처럼 그 내용이 대단히 서글픈 성격의 것이며, 이러한 것들은 후의‘부흥성가’종류로서 사람들 사이에 불렸다. 즉 교회에서 공식화되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린 것이다.

게일 역시 전통음악으로 교회음악을 세우고자 상당히 조직적으로 노력했고, 오늘날 토착화 논쟁을 펴는 한국인의 관점과 매우 흡사한 사고를 했다. 그는 한국인이 서양노래를 즐겁게 잘하는 것을 인정하였으나 이것이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겠느냐 하는 의심을 했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한 한국 민요적 성격을 가진 찬송가를 한국교회가 갖기를 원했다.5)

그는 서양곡조라도 한국음악에 맞춰 부를 수 있으면 그렇게 하기를 원했고 또한 스스로 한국의 뱃노래에 맞추어 가사를 짓기도 한 것으로 여겨진다.6) 그러나 그보다 더 적극적인 생각이 보이는 것은 찬송가 가사를 현상모집할 때에 시의 체격을 서양식의 것이 아닌 동양식의 것만을 택하라고 한 것이다.7)

게일 선교사가 지은 가사를 사용한 뱃노래는 1915년에 발간된 『창가집』에 악보로 나타난다.8) 이 악보의 음악은 그로브(P. L. Grove) 선교사가 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거기에 실린 곡의 선율까지 만든 것이 아니라, 화성만 붙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로브는 한국 사람들이 틀리게 부르는 것까지도 그대로 수용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미 불리고 있던 곡을 그대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는 『만복의 근원 하나님』을 한국인들이 부르는 그대로, 반음이 없는 방식으로 악보를 그렸고, 거기에 맞는 화성을 붙였다.9)

초창기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던 다른 선교사들 역시 원래 서양 찬송가만을 주장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후에 『신정찬송가』(1931)를 만들면서 한국민요적인 노래의 삽입을 주장한 쪽이 선교사 찬송가 위원들이었고, 반대한쪽이 한국인 찬송가 위원들이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며 거기에 관한 기록이 이 찬송가의 서문에 실려 있다.10)

선교 초기에 신교보다 더 많이 전통음악을 사용했던 천주교도 신교처럼 전통음악과의 단절을 경험한다. 천주교가 한국에 유입될 때에는 박해받는 상황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정체를 민요로 숨겨야 할 입장에 있었고 서양의 교회음악을 직접적으로 접할 기회도 갖지 못한 편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전통음악을 취하는데 그것이 ‘천주가사’였다. 그러나 역시 천주교도 박해가 없을 때에 그 토착화된 입장을 스스로 벗어난다. 이는 전통음악을 사용하는 천주가사가 다분히 임시방편적인 조치로 생각되었음을 반증한다. 카톨릭과는 반대로 신교는 선교에 있어서 박해를 받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민요로 자신들을 두드러지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신구교를 망라하여 전통음악과 교회는 그 조화에 성공적이지 못했다.

여러 예술 중에서 음악은 특히 서양의 것에 취약했다. 양악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음악은 어떤 다른 예술 분야보다 전통적인 것과의 갈등을 크게 겪었다. 문학은 우리의 글로 쓰는 것이라서 신문학(신소설, 신시 등)으로 처리될 있었으며, 우리의 언어생활에 잘 맞지 않는 한문으로부터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구어체로 옮겨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교회는 번역 성경을 한글 위주로 만들었다. 미술에서도 서양미술이 전통예술에게 커다란 충격이 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보는 그림들 중에는 아직도 동양화(한국화)가 더 많다. 그런데 유독 음악에서만은 ‘서양음악의 지배’라고 말해도 될만큼 서양음악에 의해 전통음악의 위치가 위축되어 있다.

교회는 그 문화가 화가와 가깝지 않았고 음악가들과 가까웠다. 한국의 초기 양악가들은 거의 교회출신임을 보여주는 반면, 문학과 미술분야에서는 그러한 전면적인 현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편으로 국악인 중에 기독교인이 적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광대나 기생으로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계층에 속했었고, 종교적 관계도 주로 불교나 무속에 가까이 있었다. 또한 그들의 음악으로는 교회에 발붙이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으로 여겨진다(그들이 기독교인이었다 해도). 이들의 신분적 특징은 이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이중으로 막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즉 이들이 자기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는 교회에 들어오기가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일을 버리고 교회에 들어 왔다고 해도 기피의 대상이 되어 활동이 어려운 입장이었을 것이다. 교회만이 이들에게 이러한 대접을 한 것은 아니었다. 즉 사대부나 평민들도 전통음악인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을 갖고 있었다.

교회 내에서 점차 서양의 찬송가가 불리기 시작한 때에도 남자들은 교회음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흔적이 드물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마우리(E. M. Mowry)선교사가 1913∼14년경 조직한 남성만의 찬양대는 이러한 풍토에서는 대단히 획기적이고, 이채로운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11) 1910년 이전에는 회중찬양이 아닌 대표찬양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여자들이었는데, 이들도 나이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남자가 노래하는 것은 좀 특별하게 보였다.12)

따라서 초기에는 찬양의 상당부분이 여자들의 임무였다. 이 여성들은 오늘날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층이라기보다는 선교사들이 세운 여학교의 학생이었다. 물론 남학생들도 교회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으나 그 역할이 여학생들의 것에 비교할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남자들의 문화’로 특정 지워지는 기존의 한국문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당시에 교회음악의 토착화를 시도하는 것은 길선주 목사나 게일 선교사처럼 떠돌아다니는 민요에 가사를 붙이는 방법 이외에 별다른 길이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에는 작곡가들이 없었기 때문에 창작적 성가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궁중음악의 전통은 누구나 다 아는 보편성을 띠지 못했고 제한된 곳의 행사를 위한 음악이었다. 그리고 작곡가들이 있을 때에도 교회음악은 작곡되지 않았다. 후의 홍난파, 현재명도 기독교인들이었지만 교회음악을 작곡한 것이 극소수이다. 이들은 전통음악에 대해서 상당히 부끄럽게 생각한 사람들이며, 서양음악의 매혹에 사로잡히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데까지는 나가지 못했다. 또한 이들이 서양식으로라도 찬송가를 작곡했다 해도 당시에 당장 공식적 찬송가책에 수록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한편으로는 당시에 일반 유행가나 민요 등에 가사를 붙인 ‘부흥성가’들이 계속 있어 왔으나 교회의 공식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앞의 생각들에 비추어 보면 초창기에도 토착적인 노래는 앞에 소개한 무녀의 경우와 같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으나 교회 내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켰을 것으로 짐작된다.

4

우리가 논하는 테마와 결코 무관할 수 없는 것은 초창기 한국교회에 나타난 ‘애국가’종류이다. 이는 당시에 찬송가로 쓰고 있던 외국의 민요와 국가(올드 랭 사인, 영국국가)에 한국 사람들이 애국적 가사를 붙인 것들이다. 이 노래들은 독립문 완공식에 배재학당 학생들에 의해 불렸고 또 윤치호의 「애국가」는 그가 "역술"한 「찬미가」(1905)책에 실리기도 했다. 이러한 것은 토착화라는 말에 부합되기보다는 현실정치적 필요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당시의 우리나라가 처한 국가적 위기에 나타난 애국운동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찬미가」가 감리교 공인의 책이 못되고, 다른 찬송가책들에서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탈락시킨 선교사들이 우리의 애국운동을 무시했다고 후에 비판이 있게 된다.13)

민경배 교수의 이러한 비판은 애국운동사의 측면에서 보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애국적 가사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1935년에 있었던 김교신의 찬송가 비판을 민경배 교수의 비판과 비교해 보면 대단히 의미심장한 대립관계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김교신 역시 당시에 찬송가책 발간에 책임이 있었던 선교사를 비판한다("조선어 모르는〔아펜셀러〕박사"). 그러나 그 비판의 이유는 민경배 교수와는 정반대의 것이다. 즉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과 같은 "누구나 없이 조선사람 된 자는 이 찬송가를 부를 때에 일종의 흥분을 느끼지 않는 이가 없을" 노래를 삽입하고 「샘물과 같은 보혈은」처럼 "영혼 속으로서" 부르는 노래는 뺏다는 것이다.14) 김교신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애국적 노래가 찬송가로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생각에서는 민족성으로 영성을 대체할 수 없다는 주장을 읽을 수 있다.

위의 두 가지 견해들을 좀 더 단순화 시켜 대치시킨다면 "민족이냐 신앙이냐"와 같은 양자택일적 사고로 압축시킬 수 있다. 물론 어느 쪽이나 이러한 양극화된 생각이 언어로 발설되면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른다. 왜냐면 이 중의 한쪽을 택하게 되면 신자가 아니든지 민족이 아니든지 하는 입장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자택일의 사고는 바람직스럽지 않지만 은연 중에 앞의 두 예에서 드러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러한 대결구조가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해 쉽게 동원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신앙'이나 '민족'의 문제는 너무나 절실한 것이기 때문에 그에 반한다는 데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김교신과 같은 신앙중심의 사고는 '민족'의 문제가 세상적인 문제이고 종국에는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교회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민경배 교수의 경우는 세상적인 문제, 그 중에서도 '민족'의 운명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교회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탈세상적인 사고로 세상에 대한 기독교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반면에 김교신의 입장은 '민족'을 강조하는 것이 공허해진 '신앙'을 가리기 위한 방편으로 의심할 수 있다.

이러한 양면은 한쪽 지점을 택하면 대단히 쉽게 나올 수 있는 방향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갈급한 열망을 갖고 있다. 여기의 두 방향은 충돌을 가지고 올 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에 이 양쪽 거점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교회에게 민족에 대한 기여만을 강조하는 경우 신앙의 영적인 면은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초기의 민족주의적 성향의, 민족문제의 해결을 기독교를 통해 이루어 보려고한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기독교를 떠나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쪽으로 건너간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또한 순수한 민족종교로 옮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글학자 주시경은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파악하고 이른바 '민족종교'로 귀의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는 단지 서양의 대표 기관일 뿐, 영적인 문제와는 무관한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단지 사회문제의 해결만을 그 유일한 목표로 삼을 경우 교회는 종교적인 성격을 상실하고 사회적인 기구로 되고 말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입장을 받아드리기 어렵다.

이와 비슷하게 교회를 우리나라의 음악적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기구만으로 취급하면 교회가 그러한 일을 즐거이 행할 수 없도록 하는 것과 같다. 특히 교회 밖에서 교회 안의 음악을 보면서 거기에 '서양의 것' 이상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경우 교회 안에서 공감대가 성립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교회성가를 작곡하고 다른 종교의 노래도 작곡하는 일은 위와 같은 태도로 교회를 본다고 믿게 만든다. 이런 점을 교회의 답답한 배타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교회의 동의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교회의 영적 성향에 적합한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이 우리의 전통음악으로 교회음악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같이 생각하지 않는 민족주의적 교회음악의 방향은 '교회적 '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반면에 영적인 면을 강조하는 사람들 역시 민족적인 것을 무조건 비종교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 역시 나쁜 일방성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민족 전체를 포용하고, 같이 찬양하는 방식이 꼭 반(反)교회적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민족의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민족의 소망을 담는 찬양 역시 교회에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옛 무속이나 다른 종교와 관련이 있는 음악일지라도 가사가 바뀜으로 인해 그 음악의 의미가 바뀔 수 있다. 물론 이 말은 조금 쉽게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음악을 듣고 좋지 않은 연상작용 때문에 괴로움을 당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부정적인 연상작용과 상관없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얼마든지 그런 방향의 찬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에게 교회가 서양문화만을 허용하고 우리를 드러내는 음악을 거부한다고 생각게 만드는 것은 결코 교회를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국의 교회는 변화된 자신의 입장에 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기독교 진리를 건드리지 않는한 선교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통음악을 한국교회에 접목시키려고 했던 길선주 목사의 생각은 당시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잊혀져 버렸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교회의 부채로 남아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1907년 평양에서 있었던 신앙부흥운동의 중심인물이었고 3.1운동때에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신앙’과 ‘애국’의 양면을 결합한 그의 생각과 행적은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모범적인 표상으로 남아 있다. 음악에서도 민족을 생각한 그의 시도는 좌절되었고 무시되었다. 또한 그 자신도 민족예술이 교회에서 금기시 되고 있던 상황을 깊이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평소에 젊은이들에게 자주 했다고 하는 말을 그의 아들 길진경 목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민족문화와 외국문화와의 갈등이 시작된 현실에 살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장차 우리의 문화를 상실하는 예언이 될 것이다. 특히 교회는 흥왕하고 있으나, 우리의 문화를 망각하고 우리의 예술을 도외시한다면 멀지 아니해서 교회가 교회인지 구별할 수 없는 집단으로 화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외국문화와 우리의 문화의 교차로가 된 오늘의 교회가 외국문화의 산실의 전제적인 그림자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15)

기독교를 ‘민족의 종교’로 그려본 사람은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를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민족의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생각할 때에 음악적 문제도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길선주 목사는 ‘신앙’이나 ‘민족’을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하지 않았고 어느 한쪽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손쉬움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이 두 가지의 융합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또한 당시에 무속이나 기타 종교, 그리고 쾌락적 행사와 관련이 깊다고 간주되는 음악에서 ‘민족의 것’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면을 보았고,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서 고립되었던 것이다.

앞에서 거론된 길선주 목사의 생각과 노력은 우리나라의 교회음악사에서 전형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크게 주목받은 흔적이 거의 없다. 특별히 양악가들의 지원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양악인들이 전통음악을 교회음악으로 만들려 해도 당대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가졌으리라고 짐작된다. 왜냐하면 길선주 목사는 국악을 그 자체로 교회음악화 하려고 했다기 보다 이를 편곡하여 교회에 적합한 것으로 만들려고 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길선주 목사는 김영환에게 전통음악의 편곡을 의뢰했으나 작곡을 배우지 않아 할 수 없다고 거절을 받는다.16)
따라서 음악을 작곡학적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고 악보가 없는 전통음악을 채보하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있었다 해도 이는 길선주 목사의 극히 개인적인 숙제였다. 전통음악이 교회에 맞지 않는 불경건한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더 많았다.

특히 이 음악들이 불교, 무속 등과 관련이 있어서 교회에서 일반화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또한 교회가 서양찬송가를 사용하는 것에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었다. 선교의 면에서도 서양 찬송가가 큰 어려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길선주 목사도 선교의 방향에서라기보다는 민족자존의 면에서 전통음악을 주장한 것을 본다. 그러나 ‘민족자존’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교회를 걱정하게 한다.

특히 전통음악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적극적 반대를 하지 않으면서도 ‘걱정’의 태도를 갖는 사람들이 있다. 그 걱정의 근원적인 핵심은 ‘민족’이나 ‘한국’의 개념이 ‘기독교 진리’의 입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신학적 문제이다. 무속과 타종교를 생각나게 하는 음악이 어떻게 기독교적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들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응답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세속적이거나 타종교적인 것이 어떻게 기독교화 되었는지를 다룬 일이 있다. 즉 세속적 유행음악과 거의 같은 복음성가 음악을 다루면서 여기에 관한 해답을 제시해 보려고 했었다.17)

그 해답의 핵심 중의 하나는 음악 역시 사람처럼 ‘거듭 날’수 있다는 것이다. 시편의 ‘소산님’의 노래, 칼빈의 민요적 시편가, 헨델의 메시아 중의 몇 노래, 영국의 캐롤들은 원래 세속적이었던 것이 ‘교회적’이 된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세속음악의 의미 변화는 마치 전에 어떠한 죄를 지었는가를 묻지 않고 지금 어떠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를 보아 용납하는 기독교적‘구원’과 흡사한 것으로 보았다.

한국의 교회음악은‘민족적인 것’이‘교회적인 것’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려면 상당한 자기극복과 이질감 해소에 노력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음악이 어떻게‘거듭 날’수 있단 말인가 하고 니고데모처럼 물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거듭 남’이 출생환경을 영적으로 뛰어넘는 것을 뜻한다면 음악에서도 이러한 것이 가능하다. 앞에서 소개한 무녀의 "죠션노래"는 중생한 자의‘거듭난 노래’가 아닌가 우리는 그러한 경우에는 그 음악의 의미변화를 긍정할 수밖에 없다.

5

오늘날까지의 한국의 교회음악이 보여주는 특징은 서양의 교회음악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찬송가도, 성가대 합창음악도,‘교회음악사’와 같은 책들도 번역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우리의 음악가들이 작곡한 교회음악은 비교적 눈에 뛰지 않는 곳에서 자라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역사가 100년이 지나면서 새로운 움직임이 자라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하나는 청소년층을 중심하여 급속하게 보편화된 복음성가 운동이고, 하나는 한국의 전통음악을 기준으로 우리의 교회음악을 세우자는 운동이다. 복음성가운동은 음향재생기, 라디오매체, 또는 기타반주로 연주되는 형태 등을 통해 별 논의도 없이 주로 70년대에 즉각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비해 한국전통음악으로 교회음악을 세우자는 논의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으나 아직 교회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복음성가나 전통음악성가는 교회음악을 논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 왔고 지금도 받고 있다. 하지만 복음성가는 이미‘실질적’교회음악이 되어 있으나 전통음악성가는 아직도 그러한 단계에 와 있지 못하다. 다만 전통음악성가를 옹호하는 입장이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통음악 성가를 주장하는 측에서 볼 때에 한국교회의 음악환경은 매우 비관적이다. 이는 확고한 민족주의자가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도 한국교회의 찬송가책은 대단히 수치스러운 수준이다. 우리의 찬송가 수가 너무 적다. 여기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지나치게 전통음악적 배경을 갖지 않는 한국인의 찬송가도 많이 있는데 이것조차 거부되는 곳이 우리의 찬송가책이다. 과거 한국의 교회는 우리의 음악문화 전통과의 접촉을 어려워했다는 것을 우리의 찬송가책들이 확연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60년대까지는 찬송가나 성가대 합장음악이 우리나라 작곡가들에 의해 -양악적인 것과 전통음악적인 것을 망라하여- 대단히 작은 수에 불과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교회음악 토착화 논쟁은 별로 많지 않은 전통음악적 교회음악을 배경으로 하였기 때문에 음악은 많지 않고 주장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에 작곡된 교회음악들을 보면 한국적이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인(5음음계, 전통적 장단) 음악의 수가 더 많다. 이제는 많은 곡들을 가지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온 것이다.

전통음악적 요소가 교회에 뿌리를 잘못 내리는 것은 음악의 모든 부분에 해당되지 않고 일정한 부분과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오음음계적 음악의 선율에 관해서는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박재훈의 「지금까지 지내온 것」 나운영의「시편 23편」(약간 예외적 부분도 있으나 크게 보아 5음음계 음악), 김보훈의 「주만 위해」등은 교회에서 널리 불리우는 곡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들은 아주 전통적인 유형의 음악이 아니다. 이것들이 전통적 관련성을 생각하고 작곡된 것임이 분명하나 그 전통성이 상징적인 성격의 것이다. 아주 한국적인 성격의 음계인 (남도)계면조로 작곡된 찬송가들이 더러 있으나 잘 불리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렇게 보면 선율적인 면도 지나치게 민속음악적인 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 전통적 리듬이 대단히 강하게 드러난 음악 중에 불리는 것을 찾기가 힘들다. 또한 전통적인 타악기를 쓰는 경우에는 더욱 거부감을 많이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교회에 놓여 있는 오르간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는 국악적 교회음악을 상당히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이 악기들이 할 수 있는 전통음악적 방법은 극히 제한되어 있고 많은 부분을 서양음악화 시킨다. 이 악기들의 이론적 바탕이 서양음악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수도 있겠으나 전통음악이 모습 그대로 퍼지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통음악 쪽에서는 이 악기들을 대체할만한 것을 제공하지 못한다. 가야금과 같은 악기로 반주를 한다고 하면 그 소리가 회중들의 목소리에 눌려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조금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로는 피리가 있으나 선율악기라는 점과 제한된 음역 때문에 대체악기로 생각해 보기는 어렵다. 소리가 큰 타악기만으로는 더 제한된 역할만을 하게 된다.

우리의 전통음악은‘듣는 음악’으로서 상당한 취약성을 갖고 있다. 특히 음악을‘하는 것’으로가 아니라‘듣는 것’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점이 전통음악과의 접근을 막는다. 그런데 우리의 전통음악‘하는 음악’에 속한다. 따라서 불러보거나 실제로 연주를 해 보아야 그 음악의 묘미에 접하게 된다. 그래서 들려주기보다는 해보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그러나 연주와 노래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보면 우선 들어보고 좋아야 실제로 하게 된다.

전통음악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되면, 교회에서도 더 쉽게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대중음악적 성격의 복음성가가 쉽게 교회 안에 뿌리내린 것을 보아서 짐작해 본 것이다.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해내려면 통용되는 음악의 보편성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악이 일반 사회에서 대중화되면 될수록 교회음악으로의 전망도 더 밝아질 것으로 기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교회가 수동적으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양악을 퍼뜨렸듯이 전통음악의 보편화에도 앞장서는 편이 더 떳떳할 것으로 여겨진다. 국악인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전통음악이 교회에 들어오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대중음악 가수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복음성가를 많이 부르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대중가요 가수들에게 그들의 노래방법을 버리고 다른 식으로 노래하라고 말할 수 없다. 국악인들도 자신들의 방법으로 더욱 확신 있는 찬양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교회음악이 교회에서 공식성을 갖게 되는 것은 공식적 찬송가책에 실림으로써 가능하다. 물론 교회가 공식적 찬송가책에 실린 찬송가들을‘공식적 교회음악’이라고 부르는 일도 없고 거기에 관한 확고한 규범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찬송가책이 성경에 버금가는‘교회의 책’임에도 그렇다. 찬송가책에 실리고 안 실리는 일에 전통음악적 성격이 방해가 되는지 안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인의 찬송가들이 찬송가책에 실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기존 찬송가들에 대한 방어적 경향이 많고, 또한 널리 불리는 것 중심으로 곡을 택하다 보면 새로 작곡된 것들이 귀에 익지 않아 무시당하기 쉽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개편」과「통일」찬송가에 실려있는 한국인의 찬송가들을 보면 우리 작곡가들의 찬송가들을 뽑는 과정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불과 몇 사람이 교파별로 사람별로 안배하는 선곡방법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편 토착적인 찬송가책은 더 큰 어려움을 갖는다. 지금까지 찬송가책에 실린 것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음악 토착화운동의 주요인물들이 아직 살아 있다. 그래서 토착화 성가를 찬송가책에 싣자는 주장은 자신들의 찬송가가 찬송가책에 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이는 서양식으로 작곡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경우는 논의가 예기치 않는 곳으로 흘러가기 쉽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처음부터 찬송가책에 수록될 것을 주장하기보다는 같은 뜻을 가진 교인들이나 기관들이 그러한 찬송가책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복음성가들의 경우에는 널리 일반화된 관행이다. 많은 교회들이 공식적 찬송가 이외에도 별도의 복음성가책을 가지고 있다. 복음성가 역시 토착화성가처럼 많은 반대자를 갖고 있다. 그러나 복음성가가 부수적 책으로 전파된다고 하여 그 영향력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여기에 비하면 토착적 성가는 개인의 작품집이거나 실험적 논의의 부산물이다.
또한 이미 있는 노래에 가사를 붙임으로써 ‘토착화 된’부흥성가들은 기도원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공인 찬송가책에 수록될 것을 탐하지 않는다. 복음성가는 주로 교회의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반면에 부흥성가는 영적 체험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통음악을 강조하는 토착화 주장을 받쳐주는 큰 그룹이 교회 안에 형성되어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이 토착화 성가 운동을 교회 밖의 움직임처럼 보이게 한다.

또 상기해 볼만한 일은 「개편」 찬송가에 한국인 찬송가들이 실리기 이전에 「청년 찬송가」(1959)를 통해 널리 보편화된 박재훈의 「믿는자여 어이할꼬」와 「어서 돌아오오」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곡들은 공식적 찬송가책에까지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따라서 찬송가 공회와 같은 기관은 공식적 찬송가 이전에 이러한 부수적 찬송가의 보급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장 찬송가책에 실리는 것은 확실히 모험에 속하며 좋은 결실을 예견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작사가나 작곡자들에게 발표의 터가 필요하다.

이러한 여과적 중간단계를 거치는 찬송가들이 우리나라 찬송가책의‘한국화’를 더 촉진시키리라고 생각된다. 찬송가책에 실리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음악이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성가대가 부르는 합창음악은 찬송가책과 같은 공식성을 주는 것이 없다. 그 선곡은 성가대 지휘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전형적인 전통음악적인 것은 많이 불리지 않는다. 김두완의 「본향을 향하네」, 「서로 사랑하자」 김보훈의 「엘리야의 하나님」, 박제훈의 「목마른 사슴같이」, 이안삼의 「선하신 목자」 등이 자주 불리지만, 전통음악의 직접적 수용을 보이지 않는 곡들이다.18)

물론 서양음악 유입 이후에 발생한‘가곡’들을 우리의 것으로 생각한다면 위의 곡들도‘한국적’이라는 표현에 맞으리라고 생각하지만‘선율성’과‘서정적인 정감’을 가진 이러한‘가곡’적 방향은 아직까지는 역사적 성격의 것으로 정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새로운 전통’은 그 이전의 토착적 전통을 우리의 기본적 전통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위기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통음악적 노력이 결코 쉽지 않은 것임을 가리킨다.

6

오늘날 한국 전통음악의 계승자는 누구인가? 국악인인가? 아니면 불교의 승려들인가? 무당인가? 기생인가?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이들 역시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전통음악을 계승하고 있지 않으며 어느 정도는 그 음악의 성격을 변질시켜 실제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민족 전통에 대한 생각이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이들에게만‘민족의 음악’을 맡기고 말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교회는 이제 그 의미가 변화되는 도중에 있는 음악을 교회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기독교는 이러한 방식의 민족에 대한 기여를 놓치면 안된다. 이는 단지‘문화적일’수만 있는 폐단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도 전통음악과의 접목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기독교 음악’은 곧 서양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기독교가 한국음악 전통의 합당한 상속자가 되어지기를 소망한다. 물론 이러한 전통의 계승이‘상징적인 성격’에 머무르지 않고 역동적인 싱앙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변형은 있기 마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회는 더 이상 약한 교회가 아니다. 한국의 교회는 초창기의 규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으며, 소수적 국외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상당수적 중심권에 위치해 있다. 이제 교회는 사람들에게 쉽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전혀 교회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교회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회에 대해 사회적 기여를 해달라고 하는 요청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수용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를 귀찮다고 여기지 말고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교회음악이 우리의 음악에도 기여해 달라는 외부적 요구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민족에 대해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이 태도와 함께 길선주 목사의‘걱정’과‘소망’이 함께 한다면 더 이상 바람직한 일이 없겠다. 이 모든 일들을 이루려면 당장에 공식성을 탐하기보다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비공식적이고 자발적인 부분에서 전통음악의 교회적 수용을 추진해야 좋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공식적인 찬송가들보다는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들이 더욱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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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젊은 세대는 우리의 전통음악을 주로 (국악)의 개념으로 만난다. 이는 원래의 이 음악이 갖는 상관성과는 멀어지고 <민족의 음악> 으로 정리된 때문이다. 홍정수: 『미학적 음악론』 정음문화사. 1986. p.192-223.

2) 예를들어, 문성모: 한국전통음악에서 본 찬송가 틀리게 부르기의 원인분석↗「교회음악」1987봄호 p.18-24 매우 흥미로운 이 논문은 틀리게 부르는 것을 틀리게 불렀다고 해서는 안되고 "다르게 부른 것이요 한국식으로 부른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문승의「찬송가의 오창 및 그 내용분석」 「교회음악 41호-42호, 1986여름호∼가을.겨울호」은 같은 현상들을 광범위하게 우리에게 보여준다.

3) 길진경: 『靈溪 吉善宙』종로서적, 1980 p.218. 이 책에서 말하는 ‘아악’이 어떠한 것인지는 분명하지는 않으나 아마 ‘정악’이나 ‘궁중악’에 가까운 것이리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저자가 ‘아악’과 ‘창극’을 다른 곳에서(p.212)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길선주 목사는 도움이 된다면 불교적 음악과 무용까지도 수용한 모습을 보여준다(1918년 장대현 교회의 성탄절 전야에는 아악 연주와 여승의 북춤이 있었다는 것이다. p.268)

4) 이 노래(츄풍석음가)는 「예수교 회보」 (1912. 10. 8 권41호)에 실려 있다.

5) The Korean Repisitory 1896. 9. p.377.

6) 「그리스도 신문」 1901.5.9. 지은이와 이름은 없으나 그런 경우 대개 편집자 게일의 것으로 추정된다.

7) 「 예수교회보」 1913.1.28.(제 4권 제 4호)와 그 다음호 (2.4 제 4권 제 5호)에 두 번 현상모집이 실림.

8) 백부인(白婦人, Mrs. Becker), 안애리(安愛理, Mrs. Baird): 『창가집』 평양 야소교서원 발행. 제1부 11번 곡 Boat Song.

9) 앞의 책: 제2부 10번곡 Old Hundred.

10) "죠션 구곡을 찬미로 사용할가하난 문뎨도 잇섯스나 됴치못한 샤회와 관계가 잇스니 불합하다고 죠션인위원의 반다ㅣ로 즁지하니라."

11) 어떤 책들은 1909년에 마우리 선교사가 한국에 온 이후에 장대현 교회에서 성가대를 육성하고 숭실전문학교의 합창부와 취주악부를 조직했다는 원진희(「교회음악약사」 대한기독교서회 1978.p133)의 기록을 오해하여 그 해로부터 곧장 성가대가 세워진 것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마우리 선교사 자신은 "about 1913 or 1914"라고 말한다. 길진경(각주3에서 인용된책 p.220}. 그 정확한 연대는 검증할 필요가 있다.

12)

13) "언필칭 토착신앙의 표현이 찬송의 참뜻이다 하다가도 그 당시 이 서러운 겨레의 구원에 눈물짓던 교회의 솟은 신앙의 언어를 그 찬송가에 안실어 결국 따로 발행했던 선교사들의 성실성 여부를 다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민경배: 한국교회 찬송가의 변천과정→「예배와 음악」 대한 기독교서회. 1975. p47.

14) 「찬송가의 변혁」 ↗『성서조선』 1933. 6. p.120

15) 길진경(각주 3의 책)p.253.

16) 김영환은 당시에 장대현교회의 교인이었고 일본 동양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었음. 길진경(각주 3의 책)p.218.

17) 「교회음악, 예배음악, 신자들의 찬양」 ↗『교회와 신학』 제19집 1987. p.415∼445

18)홍정수: 『교회음악개론』 장신대출판부 1988. p.83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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