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tullian Project <-- 터툴리안의 모든것!
I. 생애
터툴리안(약155–230)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퀸투스 셉티미우스 플로렌스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입니다. 참 긴 이름이지요. 당시 그의 부친은 로마 장교로서 카르타고에서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교도 가정에서 태어난 터툴리안은 덕스러운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터툴리안은 아마도 모든 일에 있어 부지런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문성도 뛰어났습니다. 특별히 로마법에 관해 심오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직업상 법률가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차분하고 냉정한 이성을 지닌 인물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약 197~198년경 그는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글쎄요. 어떻게 개종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니 분명한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는 것이겠죠. 역사는 기록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삼위일체’(trinitas)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교부입니다. 터툴리안은 삼위일체를 ‘한 본질과 세 위격들’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신ㆍ구약’ 성경이라는 용어도 처음으로 그가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삼위일체를, 즉 하나님에 관해 알려고 할 때에 반드시 터툴리안의 설명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죠.
약 200년경 결혼한 그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로마제국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146-211)의 핍박이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터툴리안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이유는 몬타니즘(Montanism)을 로마교회가 정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몬타누스파는 재혼을 금했는데 로마감독의 권위를 가지고 재혼을 허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217~222년 경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 <겸양에 관하여>를 쓴 후 역사의 기록에서 벗어났습니다.
터툴리안이 몬타니즘으로 개종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몬타니즘은 초대교회 때, 즉 2세기 중엽에 일어난 기독교의 한 종파였습니다. 창설한 자는 ‘몬타누스’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성령 운동을 강조한 종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몬타누스는 두 여인, 즉 프리스킬라와 막시밀라와 함께 동행했는데 그녀들은 성령의 인도를 직접적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위대한 여인들의 발자취>라는 책의 3장 ‘프리스킬라: 이단자’를 보면, 몬타니즘에 관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아직 활동하고 있는 동안 일부 개종자들이 이상한 교리들을 수용하고 채택했다. 예수님은 몇몇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와서 미혹시킬 것이라고 예언하신 적이 있다(마 13:20-22). 몬타니스트들이 강조하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그 결과 사도들은 성도들을 미혹시키기 시작하는 이단적 가르침들에 대해 교회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는데 주력했다(행 20:29-30; 벧후 2:1-3). 하지만 이단 사설은 교회 전체에 퍼져 나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수용하였다(요일 2:19). 2세기 말 소아시아 지방에 프리기안이라는 곳에 이단자 몬타누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성령께서 교회에 새로운 계시를 주시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과 두 명의 여인 프리스킬라(Pris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는 그 계시를 받는 선지자들이라고 칭했다. 그들은 받은 계시를 ‘새 예언’(New Prophecy)라고 불렀다. 새 예언은 박해와 금식에 저항하고, 재혼을 금하고, 죄를 미워하는 것을 강조했다.<이단과 정통>의 129~133페이지를 읽어보시면 그 궁금증이 시원하게 풀릴 것이라 믿어집니다.
II. 저서
아무튼 터툴리안은 탁월한 변증가, 논리적인 변증가, 철의 의지를 지닌 변증가였습니다. 진실하고 선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칠 단호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차분한 성품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을 왜곡하거나 사실을 과장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기독교의 도덕성을 과장하는 경우도 혹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학문성을 평가 절하해서는 안됩니다. 그의 탁월한 논리적 사고는 기독교를 변증하는 데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는 무려 31권의 작품들을 집필했습니다. 대부분이 변증적 작품, 논쟁적 작품, 교의적 작품, 도덕적 작품들 입니다. 그러면 하나씩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변증적 작품들 중에서 <이교도들에 관하여>는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은 이교의 도덕들을 비판하고, 2권은 바로(Varro)라는 사람이 제시한 이교 신앙들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책 <변증학>은 197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이전의 선배들처럼 이교를 비판하고 기독교인들의 순수성을 변호합니다. 특별히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이 부당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세 번째 책인 <영혼의 증거에 관하여>는 197~200년에 쓰인 작품으로, 6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책은 마치 <변증학>의 부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200~206년에 쓰여진 <유대인들에 반대하여>는 기독교의 진실성을 예언서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모두 1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두 번째 범주는 논쟁적 작품들입니다. 이단들에 관한 책으로, 이레니우스처럼 교회의 전통과 권위를 가지고 이단자들에 반대했습니다. 1~14장은 신실한 성도들에게 이단과 이단자들을 경계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5~37장은 이단자들도 성경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정당함을 말하지만, 성경은 진실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의 것이지 거짓 신앙을 소유한 자들의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38~44장은 이단자들이 지닌 기강들은 도둑과 강도들이 지닌 것과 같다고 혹평했습니다. 두 번째 책인 <마르키온에 반대하여>는 이단자 마르키온에 대해 비판한 책입니다.
세 번째 범주에 해당되는 교의적 작품들은 주로 <세례에 관하여>, <스콜피온 해독제>, <그리스도의 몸과 부활에 관하여>, <프락세아스에 반대하여>, <영혼에 관하여>등입니다. 그 가운데 <프락세아스에 반대하여>는 성부 고난설을 주장하는 지도자인 프락세아스에 반대해 쓴 작품입니다. 이 당시 프락세아스는 아프리카 지방에 거짓 교리를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터툴리안은 그에게 삼위일체 위격들의 구별과, 존재의 단일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와 성육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합니다.
네 번째 범주에 속하는 도덕적 작품들 가운데 <기도에 관하여>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1~9장은 주기도문을 세밀하게 설명하는 작품입니다. 10~27장은 선한 기도의 도덕적 조건, 육체적 조건, 그리고 예식적 조건들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28~29장은 기도의 유효성을 설명합니다. 다음은 <회개에 관하여>, <자선에 관하여>, <여성들을 존경함에 관하여>입니다. 이 책에서는 여성들의 옷차림, 장식을 간단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젊은 여성들에 관하여>, <결혼에 관하여>, <과부에 관하여>, <순교자들에 관하여>, 그리고 <인내에 관하여>등이 있습니다.
마지막 범주는 기강에 관한 작품들입니다. <구경거리에 관하여>, <양심에 관하여>, <핍박에 관하여>, <우상숭배에 관하여>, <외투에 관하여>가 있습니다.
이상의 저서들 중 몇 가지만 간추려 읽어보도록 합시다. 먼저 <변증학>에 관한 작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레니우스가 영지주의에 반대하여 큰 공헌을 했던 것처럼 터툴리안도 역시 이단들에 반대하여 큰 공헌을 했습니다.
다음은 <변증학>의 21장 6절, 19장 3절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시는 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두 분은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또 성령으로부터 나오시는 성령도 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시는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에 수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근원에서부터 나오시는 분이시며 결코 분리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기독교 기강과 신앙에 대한 진리가 현존하는 곳에서, 성경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성경의 설명도 발견할 수 있고 모든 기독교 전통 진리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기도에 관하여>의 6장 2절의 내용인데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영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생명이며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떡이 되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도 영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떡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덧붙여 말하면, 그분의 몸은 떡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몸이니라’는 말씀을 이와 같이 이해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일용할 양식을 간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기 위함을 기도하며 그분의 몸과 분리되지 않도록 간구해야만 합니다.”
끝으로 <프락세아스에 반대하여>의 2장 1절. “오직 한 분 하나님만 계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처럼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아들이 있으십니다. 말씀이신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고, 그분으로부터 모든 것이 만들어졌고 그분이 없이는 어떤 것도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분이 성부로 말미암아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고, 사람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가 믿습니다. 그분이 성경에 따라 고통을 당하셨고, 죽으셨고, 그리고 장사되셨음을 우리가 믿습니다. 그분이 성부의 우편에 앉아계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분이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약속에 따라 성부께서 성령을 즉 모든 자들의 신앙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을 보내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신앙의 이와 같은 규율은 복음의 시작한 후에 있었습니다. 초기 이단자들이 일어나기 전에도 말입니다.”
터툴리안의 신학은 대체적으로 정통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오리겐과는 달리 그리스 철학을 증오한 자였습니다. 영혼이 선재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 개념은 후에 있을 니케아 범교회 종교회의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별히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성부 고난설’에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삼위일체 개념을 설명하면서 ‘삼위일체, 경륜(economy), 위격, 그리고 본질’ 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성자는 성부와 구별되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끝으로 그는 ‘믿음의 규율’을 언급했는데 이는 교회의 권위 있는 전통을 의미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말하는 전통이 아니라 바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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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 명혁 목사의 글로서, 니이버의 <그리스도와 문화> 그리고 터툴리안과 그의 시대상황이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 (성육) 요1:14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의 사건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간 문화의 옷을 입은 복음의 ‘토착화’ 사건은 기독교 역사의 특성중의 하나인데, 양자(신인 및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바로 설정하는 것은 해결하기 힘든 ‘영속적인’(enduring) 문제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300여년 동안 세계에 전파되었을 때 복음은 전파된 지역의 문화의 옷을 입고 각각 다른 형태의 기독교를 형성했다. 즉,
1) 시리아의 안디옥을 중심으로 한 ‘안디옥 학파’의 기독교, 2) 북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교, 3) 로마를 중심으로 한 ‘로마 학파’의 기독교, 4) 북 아프리카의 칼타고를 중심으로 한 ‘라틴/아프리카 학파’의 기독교, 5) 희랍의 콘스탄티노풀을 중심으로 한 ‘비잔틴 학파’의 기독교를 형성했다.
이는 한국과 일본과 태국에 전래된 기독교의 형태와 특성이 각각 다른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으므로 그것을 정죄하는 대신 그대로 받아드리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고전9:22
리차드 니버는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기독교 문화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째로 나타난 기독교 문화는 문화를 적대시하는 기독교 문화로, 초대교회의 터툴리안, 중세의 수도원주의, 종교개혁 시대의 메노나이트, 근세의 톨스토이 등에 의해 표현된 ‘반문화적’ 기독교 문화였다.
둘째로 나타난 기독교 문화는 기독교의 이념과 문화의 이념을 조화시키려는 기독교 문화로, 초대교회의 노스틱주의, 중세의 아벨라르, 근세의 릿츨에 의해 표현된 ‘적응적’ 기독교 문화였다.
셋째로 나타난 기독교 문화는 문화를 완성시키려는 기독교 문화로, 초대교회의 저스틴과 클레멘트,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 근세의 조셉 버틀러 등에 의해 표현된 ‘종합적’ 기독교 문화였다.
넷째로 나타난 기독교 문화는 기독교의 이념과 문화의 이념을 역설적으로 보는 이원론적 기독교 문화로, 초대교회의 말시온, 중세의 옥캄, 종교개혁시대의 루터, 근세의 키엘케골 등에 의해 표현된 ‘역설적’ 기독교 문화였다.
다섯째로 나타난 기독교 문화는 문화를 개종 시키려는 기독교 문화로, 초대교회의 어거스틴, 종교개혁시대의 칼빈, 근세의 요나단 에드워즈와 마우리스 등에 의해 표현된 역동적 ‘변혁주의적’ 기독교 문화였다.
초대교회에 형성된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의 특성들을 간단히 살펴본다.
히브리 전통에 선 ‘안디옥 학파’의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역사성과 인성을 강조하고 성경의 역사적 및 문자적 해석을 주장했다.
헬라 전통에 선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초월성과 신성을 강조하고 성경의 비유적 및 영적 해석을 주장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교가 철학적이고 문화적이고 종합적이었는데 비해, ‘안디옥 학파’나 ‘라틴/아프리카 학파’의 기독교는 반 철학적이고 반 문화적이고 반 종합적이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클레멘트가 철학이 복음에 이르는 준비이며 문화적 요구와 그리스도의 요구를 조화시키려고 한데 비해, ‘라틴/아프리카 학파’의 터툴리안은 철학이 복음과 역행하며 문화적 요구와 그리스도의 요구가 서로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로마 학파’의 기독교는 법과 제도와 전통을 강조했고, 콘스탄티노풀을 중심으로 한 ‘비잔틴 학파’의 기독교는 의식과 신비를 강조했다.
이는 한국의 기독교가 감성적인데 비해 일본의 기독교가 지성적이며, 화란의 기독교가 정적인데 비해 흑인들의 기독교가 동적인 것과 비슷하다.
서로 대립되는 ‘라틴/아프리카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문화에 대한 상반되는 특성을 살펴본다.
‘라틴/아프리카 학파’의 터툴리안은 원죄가 사회 속에까지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세속 질서에서 멀리 떠나야 하며 세속적 집회와 세속적 직업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써커스, 극장, 경기장 등에서 공연되는 게임이나 쇼에 참석하는 것을 단호히 배격했다. 터툴리안은 여인들의 장식과 화장 등도 마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배격했으니, "피부를 약물로 문지르고, 뺨을 연지로 칠하고, 눈을 검댕이로 두드러지게 만드는 여인들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우리 나라 초기의 고신 교단의 입장과 비슷했다.
그러나 터툴리안이 "레슬링 같은 운동을 마귀의 노름"이라고 일축해 버린 데 비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클레멘트는 레슬링이 여자들에게는 적당치 않으나 남자들에게는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위해 좋은 운동이라고 말했고, 여인들이 화려한 옷, 자주색 옷, 짧은 치마, 보석 장식, 화장품 등등을 사용하는 것은 욕정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되어 금했으나, "금 장식물이나 부드러운 옷을 입는 것을 전적으로 금하지는 않는다"고 했으며 "지나친 마음의 충동을 일으켜 방종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억제한다면, 적절하게 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했다. 화장품도 적당하게, 즉 남자가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사용하면 무방하다고도 했다. 우리 나라의 기장 교단의 입장과도 비슷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롬12:2
어거스틴은 초대교회의 다양한 문화 전통들을 비판하고 종합하여 하나의 역동적이고 균형 잡힌 세계관과 문화관을 이룩했다. 어거스틴의 세속관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악한 세력의 소산이라고 정죄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로 보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선물로 극구 예찬하기도 했다. 어거스틴이 현세의 역사발전 과정과 세속질서를 "목적에 이르기 위한 잠정적인 수단과 과정"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역사과정과 세속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인간구원의 섭리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고 확신했으므로 결국 역사와 세속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즉 어거스틴은 세속질서와 문화질서에 대하여 부정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입장 및 변혁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종말에 완성될 구원 사역이 세속 및 문화 질서 안에서 지금 부분적으로 실현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인간과 사회와 문화의 ‘변혁’을 이루어가는 신자들의 삶은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하나님의 구속 섭리에 대한 전적인 신뢰 때문에 현세에 대한 비관적 어거스틴은 내세에 대한 낙관적 어거스틴으로 바뀌어졌다. 우리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그 변혁을 시도하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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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신학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보라색’이 있고, 열정적이고 배타적인 ‘붉은색’이 있고,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파란색’이 있다. 북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에서 형성된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보라’ 색깔의 신학을 주창했고, 로마에 뿌리를 두고 북아프리카 칼타고에서 형성된 라틴 학파는 열정적이고 배타적인 ‘붉은’ 색깔의 신학을 주창했으며, 예루살렘에 뿌리를 두고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형성된 안디옥 학파는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파란’ 색깔의 신학을 주창했다.
오늘은 북아프리카 칼타고에서 형성된 열정적이고 배타적인 ‘붉은’ 색깔의 신학의 내용과 특성을 살펴본다.
“철학은 이단의 어머니”‘신앙과 이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양한 입장들이 이천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 나타났는데, 라틴 학파는 양자와의 관계를 ‘불연속적’이고 ‘상호 배타적’인 관계로 보았다.
라틴 학파의 터툴리안(150-220)은 그의 저술 <이단논박>에서 이성과 철학 일반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입장을 취했다.<이단논박>7절에서 “철학은 이단에게 장비를 제공하고 있다. 예루살렘과 아덴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What has Jerusalem to do with Athens?) 고 외치며 철학을 비판했다. 터툴리안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믿음을 가진 후에는 탐구가 필요 없다고 단정했다. 같은 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사변이 필요 없으며 복음 이후에는 탐구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의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신앙을 이교 세계를 향해서 분명하고 강하게 변증하기 위해서였다.
터툴리안은 신앙의 절대성과 배타성을 <이단논박>13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신앙의 규칙(Rule of Faith) 즉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하나의 신앙에 대해서는 어떠한 질문도 용납되지 않는다. 물론 신앙의 규칙이 방해 받지 않는 범위 안에서 토론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결론을 말하면, 잘못된 것을 알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무식하게 있는 것이’(remain ignorant) 낫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했지(눅18:42) 네 성경 지식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단논박>16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성경에 관한 토론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복통과 두통을 가져올 뿐이다.” “Arguments about Scriptures achieve nothing but a stomach-ache or a headache.” 결국 터툴리안은 “모순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I believe because it is absurd.) 라고 외치면서 신앙의 절대성과 역설성과 모순성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하셨다. 이와 같은 일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다. 이것은 극히 어리석은 말이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는 장사 되었다가 다시 사시었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확실하다.” (“그리스도의 육신에 대하여” 5).
“세상이 기뻐할 때 우리는 차라리 슬퍼하자”
‘복음과 문화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양한 입장들이 이천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 나타났는데, 라틴 학파는 양자간의 관계를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로 보았다. 터툴리안은 세상과 문화 일반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다. 터툴리안은 리차드 니버가 분류한 대로 ‘반 문화적 입장’(Christ against Culture)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다.
“터툴리안은 원죄가 사회 속에까지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니버, “그리스도와 문화” p.5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속 질서에서 멀리 떠나야 하며 세속적 직업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써커스, 극장, 경기장, 등에서 공연되는 게임이나 쇼에 참석하는 것을 단호히 배격했다. “그와 같은 것들은 마귀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마귀 때문에 만들어진, 악한 자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에 관하여” 24).
“조각, 회화, 문학, 수학, 체육, 첨성술, 연예, 교육, 정치, 병무 등의 세속적 직업을 일괄적으로 정죄했다. (“우상숭배에 관하여” 5,8-11, 18-19).
터툴리안은 재물을 악한 것으로 보며 돈을 사랑하는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여인들의 장식과 화장 등도 마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배격했으니, “피부를 약물로 문지르고, 뺨을 연지로 칠하고, 눈을 검댕으로 두드러지게 만드는 여인들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여인의 옷에 관하여” 5).
터툴리안의 입장이 좀 극단적인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가 사고와 삶에 있어서 항상 세속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터툴리안은 세속화와 우상숭배를 경계하면서 이렇게 글을 썼다.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으로부터 교회로 온다. 원수의 작업장으로부터 하나님의 집으로 온다. 우상을 만들던 손을 하나님께 높이 든다. 마귀에게 내주었던 손으로 주님의 몸을 만진다. 우상 제조업자들이 성직자의 자리까지 차지한다. 이것은 탄식스러운 일이요 뿌끄러운 일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손을 한번 그리스도에게 얹었지만 이들은 날마다 그의 몸을 괴롭힌다. 여러 종류의 수공업은 모두 우상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책망을 받을 만한 일이다.” (“우상숭배에 관하여” 7,8).
그리스도인들이 이교적 축제에 참여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했다. “그와 같을 경우에 하나님의 종이 옷이나 음식이나 다른 방법으로 이교적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가? 사도가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말한 것은 형제들에 관해서 말한 것이다. 즉 믿는 형제들과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는 빛과 어두움이 사귐이 있을 수 없고 생명과 죽음의 사귐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성경은 ‘세상이 기뻐할 때 너희는 슬퍼하라’고 했다. 우리가 세상과 함께 기뻐하면 세상과 함께 슬퍼하게 될까 봐 염려된다. 우리는 세상이 기뻐할 때 차라리 슬퍼하자. 그래야 세상이 슬퍼할 때 기뻐하게 될 것이다.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서 즐거워할 때 부자는 고통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세상이 하는 대로 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방인들과 함께 살도록 허용되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죽도록 허용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세상에서 살지만 그들의 잘못을 함께 나눌 수는 없다.”
터툴리안의 입장이 좀 극단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밴틸 교수는 터툴리안을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지명하면서 우리는 그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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