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15, 2008

자유주의 신학과 그리스도: 사랑 희망 복종 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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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버의 책 제목이 '기독교와 문화'가 아니고 '그리스도와 문화'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니이버는 자신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책의 도처에 끼워 놓았습니다. 단지 그 이야기와 담론이 '한국기독교문화'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투'이어서, 그곳에 몸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렵게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하든 이를 풀어가며 대화를 소통시켜 우리들 담론의 새 차원이 열리어 가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바랍니다.

니이버가 <조나단 에드워드의 시대착오성>에서 에드워드를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하며 '왕따'시켰다는 19세기 유럽 지성인들이 <그리스도와 문화>에 자주 등장합니다. 지난번 제1장에서 니이버가 그리스도를 '사랑' '희망' '복종' '겸비' 등에 의해 정의한 이유는, 19세기를 정점으로 하는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주요 주제들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그 주제마다 대표적 신학자들이 등장하는데 다음의 요약과 관련링크가 <그리스도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책에 나오는 순서를 따르지 않고 역사적인 등장 순서와 계보를 따랐습니다.

<<사랑>>

유럽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17세기의 정통주의, 18세기의 계몽시대의 경건주의, 합리주의 신학을 거쳐 19세기에 이르러 독일관념론의 터전 위에서 소위 자유주의 신학을 정립하기에 이릅니다. 이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인간중심적'이다고 하겠습니다. 항상 인간의 삶의 현실로부터 신학을 시작합니다. 예수를 인류의 모본이나 교사로 보고, 하나님 나라의 미래적이며 종말론적인 면보다는 현재적인 면을 강조하여, 그리스도를 인간의 종교적 경험 속에 내재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것이 그 공통점입니다.

이 자유주의 신학의 선구자라 일컫는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의 <종교론 On Religion:Speeches to its Cultured Despisers>의 영문판독일어 원문 입니다. 1893년에 번역된 영문판 전체를 다운 받을 수도 있습니다.

1799년에 출판된 그의 처녀작으로서 종교(당시의 기독교문화)를 멸시하는 교양인에게 보내는 이 책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선언서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제목이 보여주듯이 이것은 경건주의를 배경으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에 대해 종교가 현대에서 어떻게 존립 가능한가를 해명한 종교 변증서입니다.

계몽주의의 종교연구는 그 본질을 종교 현상에서 발견하려함으로써 종교를 도덕으로 환원하거나 철학에 종속시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합리주의적 종교는 19세기초 독일 낭만파 지성인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슐라이에르마허는 계몽주의의 종교관의 비판을 출발점으로 종교의 직접적인 체험에 근거하여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종교는 "무한자에 대한 감각과 맛"이며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이라는 견해를 피력합니다. 따라서 도덕화되고 이성화되었던 계몽주의 시대의 종교관에 반기를 들고 직관과 감정을 종교의 본질로 주장하여 종교의 독자성을 확보한 것이 그의 공헌으로 평가됩니다. <종교론>은 젊은 지성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어 그들이 외면하고 멸시했던 종교에로 다시 돌아오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슐라이에르마허의 전통을 따르며 자유주의 신학의 왕자라 불리우는 리츨Ritschl은 신학의 영역으로부터 모든 철학과 신비주의를 축출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복음을 신학의 토대로 삼으려했는데, 그의 신학 체계의 중심점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이 성서적인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고 교회를 개혁하려 했으나 그들의 종교적인 통찰을 통전적인 신학 체계로 정립하지는 못했다고 보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신앙에 의한 칭의의 교리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서의 교훈사이의 관계성을 주목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죄로부터의 개인적인 구속을 강조했으나 사회 구원을 지향하는 윤리적인 활동을 소홀히 했다고 합니다. 리츨은 종교 개혁자들의 이런 취약점을 보완하여 종교개혁 작업을 완성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리스도와 문화> 제3장 2절 - "문화-프로테스탄티즘"과 리츨 - 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리츨이 쓴 책 중 자주 인용된 <The Christian Doctrine Of Justification And Reconciliation>을 클릭하시면 Google Book Search에서 Harvard대학교 소장본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리츨은 기독교를 하나님 나라를 창건한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위에 세워진 영적 윤리적 종교로 정의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기독교는 하나의 중심을 가진 원이 아니라, 두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입니다. 종교적 또는 영적 중심과 도덕적 중심이 그것입니다.

전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통한 구속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며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합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자유 속에서 존재하는 한 영적 종교입니다.

후자는 그리스도가 창건한 윤리적인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가 교회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이다 라고 합니다. 그것의 목표는 인간 사회 전체를 하나님 나라로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에 감동된 행위를 통하여 이룩된 인류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인 동시에 인간의 최고 선이다. 기독교인의 임무는 그것을 확산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리츨은 사랑이 궁극적 덕인 하나님 나라를 지고의 윤리적 이상으로 간주했습니다.

바로 이들이 말하는 사랑을 니이버가 <그리스도와 문화> 1장에서 그리스도를 정의하며 대비시켰습니다. 니이버는 말하기를: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공통된 성질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다만 공통된 근원을 가진 두 구별된 덕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유일한, 참 선한 이를 찬양하는 것이며 모든 은사를 주는 이에 대한 감사인 것이다. 이것은 거룩한 기쁨이다. 이것은 '존재(Being)에의 찬성'이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찬양보다는 불쌍(긍휼)히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감사라기보다도 주는 것과 용서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사악과 불경성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있는 그대로 수락하는 것을 응함이 아니라, 회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비소유적인 에로스요, 사람에 대한 사랑은 순수한 아가페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열정(passion)이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동정(compassion)이다."

니이버는 여기서 <조나단 에드워드의 시대착오성>에서 조나단 에드워드를 왕따시킨 그 인간의 오만한 자신감, 그러니까 19세기 리츨 등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정의가 어떻게 처참히 좌절되는지를 1,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트뢸취Troeltsch는 예수의 사랑의 윤리가 사회적 현실과 타협하는 과정으로서의 기독교회사를 서술하였고, 하르낙Harnack은 정신과 이성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적 신앙에 도취되어 '신과 세계' '종교와 문화' '신앙과 사고' '신적질서와 지상적 질서' '권좌와 제단'을 자연적인 조화로 연결시켰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민적 이상주의 시대의 최대의 설명을 수행했습니다.

1장의 문제제기에서 자주 인용된 하르낙의 <What is Christianity?>의 전문입니다.

이러한 하르낙의 역사의 진보에 대한 신앙에 의하면, 역사적 과정이 곧 신적운동이고, 이 신적운동의 목적은 역사속에 인류를 한 단계씩 자연상태에서 문화에로 상승하게 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개별적 인간은 이 정서적 힘들에 의해 자신을 밝히면서 자연상태로부터 역사의 과정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이 특수한 양식 속에서 여기저기에 정신적, 신적 힘을 소유한 개인들이 역사에 나타나고, 이러한 '계시전달자' 중 최대의 개인이 '나사렛 예수'라고 합니다.

사실상 슐라이에르마허에 있어서 감정이라든가, 종교적 체험이라는 것은 신인식의 기관이었으며, 신의 계시와 인간의 종교적 문화의 어떠한 긴장도 제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신은 인간의 종교적 체험의 깊이 안에서 길들여지고, 인간의 종교적 문화 안에서 길들여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에 있어서 종교는 문화와의 철저한 밀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의 문화적 프로테스탄티즘이 말하던 '사랑과 평화의 왕국'(하르낙)은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의 발화와 함께 무너졌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신학적 의미는 19세기를 지배했던 역사의 진보에의 부르조아적인 신앙이 허구임을 드러낸 역사적 실증이라는 점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역사적 진보사관에 의하면 칸트Kant이래 계몽사상으로 시작된 이 역사는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찬란한 꽃을 피워야만 했지만, 객관적 역사의 과정은 진보사관의 환상과 착각을 발견하도록 했으며, 그것은 곧 진보사관을 전제로 한 19세기의 문화적 프로테스탄티즘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프로테스탄티즘 즉 자유주의적 신학은 1914년 8월 14일 하르낙이 기초하고 93명의 학자들이 서명한 독일 황제의 전쟁발발에 대한 '93지성인 성명서 Manifesto of the Ninety-Three German Intellectuals'와 함께 종언의 서막을 고했습니다.

변증법적 신학의 주창자였던 바르트Barth는 그 당시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술회했습니다.

"그 해(1914년) 8월 초순은 적어도 나에게는 암흑의 날이었다. 93명의 독일 지식인들이 빌헬름 2세의 전쟁선포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지지서명을 발표했는데, 이 지식인들 중에는 이제까지 숭앙해 왔던 신학스승들의 이름(하르낙, 제베르크, 헤르만 등)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경악케 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이들의 윤리학과 교의학, 성서해석과 역사관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고, 더우기 19세기의 신학은 더 이상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을 절감했다."

바르트의 스승의 하나님 나라의 신학은 결국엔 독일의 이기주의적 영토확장을 뒷받침해주는 세상 나라의 전쟁신학으로 귀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신학의 필연적 귀결이요, 그 이론적 실천적 실패의 징후였습니다.

"자유주의의 역사는 미로였고 사도(邪道)와 미궁의 역사였다. 그 힘은 모순과 상호파괴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이 뛰놀았다."

<그리스도와 문화> 제1장 2절 그리스도의 정의에 관하여: 희망복종의 주인공 들은 슈바이쳐Schweitzer와 불트만Bultmann 인데, 다음과 같이 용어를 정리해 봅시다.

<<희망>> / <<복종>>
묵시적 종말론 / 실존주의적 종말론
슈바이쳐Schweitzer, 몰트만Moltmann / 도드Dodd, 불트만Bultmann
초월적 / 내재적
현상학 / 해석학
실재 / 존재
already / not yet


이들간에 변증법적 긴장, 또는 창조적 긴장에 대한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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