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15, 2008

Ernst Troeltsch

에른스트 트뢸치의 윤리사상

Th.D 4학기 박기권

1. 트뢸치의 생애와 사상적 배경

트뢸치(Ernst Peter Wilhelm Troeltssch, 1865-1923)는 1865년 2월 17일 남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가 성장하던 시기는 프러시안 제국의 정치 경제적인 중요성이 확대되던 시기였고, 그의 말년에는 프러시안 제국이 멸망하고 바이마른 공화국이 탄생하던 시점이 겹치고 있었다. 그의 생애는 그 이전의 다른 사상가들이 보지 못하였던 폭 넓은 정치, 경제, 문화적 요인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의 생애는 독일 사회가 근대적 요구들을 수용해 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문화적 변화 속에 걸쳐져 있었던 것이다.

사상적으로 트뢸치의 윤리사상에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들은 칸트, 쉴라이에르마허, 로체, 그리고 리츨 등 이었다. 그는 형이상학적이며 초자연적인 과거의 주장에 기초한 교리적 신학은 역사적 방법에 의하여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트뢸치의 지성적 사고는 유물화된 기독교에 대한 회상이나 내면화보다는, 기독교가 살아 움직이므로 역사 속에서 그 존재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그런 신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현대의 사회적 변화와 자연과학적인 세계관의 변화는 중요한 신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느끼고 있었다.

트뢸치는 리츨이 자신의 신학적 통찰을 가지게 해준 장본인이며, 그를 통하여 낡은 신학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신학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술회하였다. 리츨에 의하면 기독교는 하나님나라를 기초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완벽한 윤리적 종교로 규정된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사랑에 고무된 행위를 통하여 성취된 인간성의 조직이다. 따라서 전통신학이 속죄론적 의미에서 구세주 예수를 강조하였다면, 리츨은 그러한 대속적인 예수 보다는 역사적 예수의 삶의 의미와 가치에서 실천적이며 역사적인 의미를 강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리츨에게서 트뢸취는 역사적 예수의 중요성을 배웠으나, 그러한 가르침 역시 과거 교의신학의 산물이라는 점을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었다. 트뢸취는 기독교신앙의 유산들도 역사적 산물이라는 내심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절대성에 대한 과거 교의학적 명제들을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트뢸치는 역사 안에 있는 지식의 내용들의 상대성을 긍정하는 관점에서 볼 때에, 믿음과 이성을 연계 짓는 종교개혁적 입장과 정통주의 입장은 그의 신학사상 안에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전통적으로 율법과 복음이라는 도식 아래 이해되어 왔던 신앙과 이성의 이원론은, 종교개혁적 원리들이 과거와의 엄정한 단절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과거와 연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중세기적인 요소들이 그 안에 남아있다고 그는 판단하였다.

이 점은 그의 루터에 대한 평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기독교도 종교의 역사라는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그는 역사 안에서 어떻게 절대성의 개념이 성취될 수 있는가에 회의하면서 기독교의 절대성에 대해 진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리츨이 계시와 자연을 구별하고 역사의 범주를 초월하는 계시를 기독교신앙의 절대적 가치로서 긍정하였다면, 트뢸치는 역사와 계시를 구별하는 리츨을 비판하고 계시에 근거한 교의학적 진리의 절대적 가치와 그것이 지니고 있는 배타성을 비판하였다.

여기서 트뢸치는 교의학을 역사 비판적 방법론으로 극복하려 하였으나 종교전반을 상대화시키는 길로 나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쉴라이에르마허의 종교적 지식에 대한 직관적 자명성을 종교의 선험성으로 받아들였고, 이 종교적 선험성에 근거하여 종교란 주관적인 측면에서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 객관적인 측면에서는 역사적 가치영역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뢸치는 종교발전에 대한 평가기준을 교의학적 주장들과 같이 종교밖에 있는 것들에서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종교의 역사적 발전과정 자체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심성 속에서 종교의 위치를 찾는 종교심리학과 종교의 다양성 속에서 법칙과 연관성을 찾는 종교사는 결과적으로 종교 안에 나타난 다양성을 인식하게 하는 과학적 방법론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트뢸취가 이전의 다른 기독교 사상들과는 매우 다른 신학적 관점을 형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종교는 선험적 종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나 그 종교적 가치들은 역사적 정황 속에서 새로운 도덕 가치체계로 존립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뢸치는 칸트에게서 인간의 삶에 미치는 윤리적 요인들에 대한 도덕적 가치와 이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트뢸치는 칸트의 종교이해가 종교의 자존성에 대한 이해를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다고 보았던 쉴라이에르마허의 지적에 동의하였고, 이 문제를 그에게서 보완하였다. 트뢸치는 칸트의 이성적인 도덕적 종교에 대한 이해의 건조함을 쉴라이에르마허의 하나님과의 직접적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감정의 신학으로 보충하려 하였다.

2. 트뢸치의 종합적 방법론

트뢸취가 종교는 그 나름대로 종교의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까닭은, 당시 종교를 부인하는 유물론적 사상의 대두가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트뢸취는 당대의 신학적 곤경은 신학 안에서 좌절을 경험해야 할 문제라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신학적 곤경을 통하여 새로운 세속 휴머니즘의 전통이 싹을 내는 새로운 도전들을 직면하면서, 신학이 더욱 성숙해 질 수 잇다고 보앗던 것이다.

그 당시 트뢸치에게 있어서 인지되었던 커다란 도전은 바로 유물론적 세계해석과 이에 따른 무신론적 세계이해였다. 따라서 트뢸치는 초자연적 교의신학과 종교에 대한 적대적인 무신론이 출현한 시대적 정황에서 제3의 길, 즉 종교와 세속의 종합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이는 곧 종교와 세속 이념의 종합,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의 종합, 이상적인 과제와 사회 정치적인 과제의 종합이라는 과제였다.

3. 트뢸치의 윤리학 방법론

가. 기독교의 본질

트릴치는 순수하게 종교적인 이상을 가지고 있었던 기독교 복음 그 자체로서는, 역사 현실과 적극적으로 관계할 수 있는 틀, 즉 사회신학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순수한 종교이론을 가지고 사회문제들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종교적 해명을 시도한다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결과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정황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관계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형식은 단일한 하나로 이해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트뢸치는 하르낙을 따라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본원적 성격을 회복하려면 관념적이고 교조적인 요소들을 벗겨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기독교 이해에서 본원적인 기독교 요소들을 회복시켜 내는 과제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작업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트뢸치는 현대적 역사 비판론을 신학 안에 수용해 들였다. 이런 관점은 그 당시 신학으로서는 새로운 관점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

나. 역사적 현실관계

트뢸치는 역사 현실 속에서 기독교적 이념이 세계와 가지는 관계 형식을 사회학적인 요인들, 즉, 가족, 경제, 그리고 정치구조 속에서 파악하려 하였다. 이 세가지 형태의 사회제도는 인간의 삶 속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사회윤리적인 태도를 요구하는 것들이다.

1911년 트뢸치는 [기독교회와 그룹들의 사회이론]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트뢸치가 기독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내면에서 내리고 있는 결론은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인 것이며 단일한 체계적 이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체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다양성은 역사적 조건에 의하여 구성되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 역시 이러한 다양성의 구조와 더불어 다양한 신학적 견해와 입장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 문명화된 사회윤리

트뢸치에게 있어서 종교란 정신사와 문화사가 종합되는데에서 비로소 그 종교의 사회적 타당성이 형성된다는 통찰이 작용하고 있다. 트뢸치는 종교적 요인이 사회적 요인들과 만나면서 신학적 이해구조가 사회현실에 대한 이해의 폭을 규정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즉, 종교와 사회가 만날 때 정신적 요인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서 사회현실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라. 트뢸치의 유형론적 이해

트뢸치는 기독교 초기의 메시지가 순수한 종교적 가르침으로서 사회운동의 차원을 지향했다고 보지는 않지만 기독교 안에는 기독교의 발전을 초래하게 되는 두 가지 중요한 사유의 원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하나는 한 개체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나오는 급진적인 종교적 개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적 합의를 불러오는 보편주의이다. 트뢸치는 그의 주요 저작인 [기독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매듭지으면서 이상과 같은 관점을 가지고 기독교회의 역사를 세 가지로 유형화 하였는데 그것들이 바로 종파형(sect type), 교회형(church type), 그리고 신비주의(mysticism)이다.

(1) 교회형의 신앙

교회형의 신앙은 구조와 조직을 갖춘 제도적 교회를 뜻한다. 종파형이 자발적인 개체신앙인의 공동체로서 세상의 현실 밖에 존재한다면 교회유형의 신앙은 엄격한 교회의 교리와 체계 아래에 타율적으로 존재하는 신앙인을 구성요소로 한다.

은총을 지향하는 교회유형의 신앙은 죄의 용서를 강조하되, 죄의 극복에 대한 낙관적인 이해로 나가지 않는다. 따라서 교회유형의 신앙은 매우 현실주의적인 윤리적 이해를 수반하게 된다.이러한 교회유형의 신앙에서 바라본 그리스도는 구속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은총의 종교를 완성하신 분으로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교회유형의 신앙은 하나님 나라를 교의화 된 그리스도의 나라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가진다. 따라서 교회유형의 신앙은 구속적이며 대속적 은총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종말론적 결단보다는 역사 현실에 대한 감각을 가진 신앙인을 옹호한다.

그 결과 역사 속에서 경험하는 죄의 현실에 대한 대안적 사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예수의 날카로운 메시지를 약화시키는 대신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타당성을 확보하려 한다.따라서 교회유형의 신앙은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책임의 윤리가 강조되고 사회, 정치, 경제적 현실에 대한 수용이 두드러진다. 그 결과 불완전한 세계를 살아나갈 지혜를 구하게 되고 속죄와 은총의 길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유형의 신앙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순수 종교윤리적 성격을 상실하기 쉽다는 것이다. 교회유형의 신앙이 실천적 가치보다는 신앙적 가치를 우위에 둠으로서 저급한 신앙의 세속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기독교 본유의 가치를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를 낳고 있다.

(2) 종파형의 신앙

트뢸치가 종파형의 신앙을 언급할 때에는 기독교공동체의 자발성을 가장 커다란 특징으로 들고 있다. 종파형 신앙인들은 자신들이 지키려는 신앙의 원리가 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원리보다 훨씬 금욕적이며 비제도적이라고 믿고 세상을 따라 살기를 거절하는 자발적 참여자들이다. 따라서 세상으로부터 분리를 주요한 신앙생활의 원칙으로 천명한다. 교회유형의 신앙이 죄의 구조를 수용하는 대신 은총론으로 대속적 종교를 지향한다면 이들은 죄의 구조에 대한 단호한 거절을 강조하기 때문에 대속적 은총론을 받아들이려는 의도가 취약하다. 그 대신 예수께서 주신 새 법을 기독교적 삶의 근간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법의 정신이 실현될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성을 중시한다. 이들은 현세와 하나님 나라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 의미를 축소함으로써 그 연속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현세에서의 온전한 삶이 하나님 나라로의 이행의 조건이라고 믿는 것이다.

소종파 유형의 교회가 이해하는 그리스도는 주님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종파형의 신앙은 하나님 나라를 교회화 하는 것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본질적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세속화 시키거나 인간의 죄를 향한 경향과 타협시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종파 유형의 신앙운동은 역사적으로 보편적인 합의를 얻어낼 만큼 호의를 얻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앙이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강점은 순수한 신앙의 원리를 그대로 보존하였다는 점에 있다.

(3) 신비주의 신앙

신비주의 신앙의 유형은 형식적 예배와 굳어진 교리에 의존한 신앙의 객관성을 지지하기 보다는 순수하게 개인적이고도 내면적인 체험을 수반하는 신앙을 강조한다. 신비주의 전통에서 본 그리스도는 일종의 내면적인 영적 원리로서 모든 종교적 체험을 불러일으키는 분이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영적이며 내면적인 체험을 통해서 인지되는 분이시다.

또한 신비주의 유형의 신앙에서 본 하나님 나라는 거룩한 영성의 지배를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외면적인 세계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내면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나라라고 믿게 된다.

그런데 이 신앙이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는 신앙의 구체화의 결여, 탈역사적 체험 강조, 그리고 체험주관의 개체성이 너무 강조되어 공동체적이며 역사적인 신앙의 지평을 향해서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신과의 합일의 경지를 이루어내는 무사무욕, 비의가 깊은 종교체험에서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신과 인간의 질적 차이가 강조되기 보다는 질적 차이의 극복 가능성이 긍정되기 때문에 인간의 뿌리 깊은 죄 성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신비주의 신앙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적 구원의 의미는 약화되어 그리 중요한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4) 금욕주의적 개신교

트뢸치의 세 가지 유형론적 특성을 종합하고 있는 것이 금욕적 개신교라고 볼 수 있다. 개신교적 특성은 무엇보다도 소종파 유형적인 금욕적 윤리를 다분히 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개인의 체험을 긍정하여 객관적인 교조적 주장에 신앙의 모든 문제를 맡기지 않는다는 점은 신비주의 전통의 수용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교회유형의 자기 변혁적인 한 틀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4. 트뢸치의 종교사학적인 기독교윤리 이해

트뢸치의 기독교 이해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바는 일종의 문화적인 종합론이다. 트뢸치는 그의 기독교 신앙의 유형론을 통하여 종교와 세속이념의 종합,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의 종합, 이상적인 과제와 사회 정치적인 과제의 종합이 기독교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하였다.그는 일단 종교의 독립성에 대한 연원적 질문을 제기함에 있어서 기독교신앙과 세속세계와의 연계 가능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함으로서 양자를 분리시켜 놓았다. 이러한 분리를 계속 주장하는 경우 기독교 사상은 역사화되지 못하고 소종파적인 신앙으로 잔존하여 즉자적인 공동체성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자기 정화와 구원의 희망을 안고 비정치적, 비사회적, 비경제적 원리에 기초한 자구적 사회공동체가 바로 소종파적 삶의 이상이었기 때문에 소종파적 신앙을 향하여 사회 정치 경제적 책임의 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된다.

이와 유사하되 더욱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신앙 유형인 신비주의 역시 역사적 종합의 원리를 거절하였다. 여기에서는 정신과 내면세계에 치중하여 외적인 역사적 삶의 조건들을 간과하는 무리가 일어나고 있지만 신앙의 내면적 가치와 종교체험의 깊은 확신은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계기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신비주의 유형의 신앙 속에서도 우리는 역사의식을 동반한 책임적 신앙의 구조를 유출해 내기 어렵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일상적 삶과 차단하려는 신비주의적 영성은 이 세상의 구체적 삶의 원리들을 이해하는 데에 너무나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관점을 연장하여 교회유형을 살펴본다면, 아마도 트뢸취의 관점에서는 대표적인 기독교신앙의 역사화 혹은 구체화가 가능한 경우라고 여겨질 것 같다. 트뢸취는 순수한 종교적 가르침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기독교 복음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만나면서 일종의 종합화, 혹은 타협화를 거쳐 문명사회 속에 적합한 윤리적 지침을 얻게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뢸취는 소종파 유형이나 신비주의 유형의 역사적 의미는 긍정하되 역사적 책임의 지평은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신앙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교회유형의 신앙은 타협의 지평을 거쳐서 순수종교 윤리가 문명화된 윤리로의 적합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실용성 있는 윤리적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 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타협 혹은 종합화가 소종파 유형의 신앙 관점에서는 기독교의 본질적 가르침을 왜곡한 저급한 타협의 윤리라고 평가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교회유형의 신앙과 윤리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평가와 더불어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사실들이 트뢸취의 사회학적인 연구결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트뢸취가 이러한 결과를 산출해 낸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지난 역사적 체험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공식과 같은 것이므로 이러한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5. 나가는 말

트뢸치에 대하여 가해지는 평가는 대략 세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트뢸치의 신학은 신학의 막다른 골목길에 이르게 한다는 평가이다. 신학을 사회학적 방법을 통하여 규명함으로서 신학이 가지고 있는 가치들을 사회적 가치에 예속시키고 말았다는 이해가 이러한 평가를 내리게 하였다. 또 하나의 입장은 트뢸치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의 공허함보다는 훨씬 날카로운 해명을 담고 있다는 평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평가는 아마도 트뢸치가 기독교 교회의 역사를 규명함에 있어서 사회학적인 요인들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트뢸치에 의하면 신학적 이해는 가치판단을 통한 정당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검증을 받게 된다. 신학은 혹은 신학적 윤리학은 그 스스로의 주장 속에 자명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신학적 윤리가 사회와 인류 문명과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영향을 주었고 기능할 수 있었으며 또한 하고 있는가가 그 신학적 윤리의 정당성 유무를 평가하게 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종교본연의 심원한 가치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실용적이며 효용적인 가치를 동반하는 종교윤리에 대한 긍정이 트뢸치 사상 속에 암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독교 사회윤리학이 가능한 교회유형이 다소 종교윤리에 기반하여 사회의 변혁을 도모하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유형의 기독교신앙은 지난 기독교 역사 속에서 사회변혁을 통하여 좀더 정의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향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사회통합적 기능에 더욱 주력하여 세계의 변화의 속도에 뒤진 보수세력으로 잔존하던 흔적을 더욱 많이 남기고 있다.


참고 문헌

1. Ernst Troeltsch, 『The Social Teaching of the Christian Churches』 v 1.2,Westminster/John Knox Press

2.에른스트 트뢸취, 현영학 역 『기독교 사회윤리』,한국신학연구소

3.박충구,『기독교윤리사Ⅱ』,대한기독교서회

4.김철영,에른스트 트뢸취의 신학형성과 문화유형론에 관한 연구, 장신논단

No comments: